朴대통령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시험대에 올라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정책 구상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아직 제대로 꽃도 피어보지 못한 상황에서 개성공단 사태로 또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기본적으로 북한이 비핵화를 진전시키고 무력도발 중지 등 남북 기본조치 이행을 통해 신뢰가 쌓이면 인도적 지원과 사회·문화적 교류를 활성화하고, 나아가 남북 경제공동체 건설로 통일의 기반을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당선인 시절 북한의 비핵화 거부 선언과 제3차 핵실험 강행으로 새 정부가 출발도 하기 전부터 휘청였던 박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개성공단 가동중단 조치에 이은 우리측 근로자 전원철수 결정으로 중대고비를 맞게 됐다.

개성공단은 남북 화해협력의 상징이자 마지막 남은 평화 완충지대로 불렸던 곳으로 2007년 준공 후 본격가동된 이래 수차례 위기를 맞았지만 근로자 전원철수 같은 극단적 상황은 없었다. 지난 2010년 천안함 폭침에 따른 5·24 대북 제재조치와 그해 11월 연평도 포격 사건과 관련한 출입경 차단 등 엄중한 위기 상황에서도 개성공단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박 대통령은 북한이 개성공단의 통행을 금지시키고 북측 근로자가 모두 철수한 와중에서도 연일 북한이 올바른 변화의 길로 나설 것을 촉구하면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다졌던 게 사실이다.

또 강경대치 일변도로 치닫고 있는 한반도 상황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인식하에 긴장국면 해소에 보다 적극적인 의지를 나타내기 위해 대화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이 이같은 대화제의에 "아무 내용이 없는 빈껍데기에 불과하다"고 비난하는 등 남북대화에 응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자 박 대통령의 어조도 점차 차가워졌다.

지난 24일 언론사 편집·보도국장들과의 오찬에서 개성공단 문제와 관련해 강한 톤으로 "북한이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이 되도록 하는 방향으로 우리가 노력해야지 퍼주기를 한다거나 적당히 넘어 가는 일은 새 정부에서 결코 있을 수 없다"고 못박은 게 대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우리측의 남북 실무회담 개최 제의를 북한이 끝내 거절하자 박 대통령은 26일 외교안보장관회의를 긴급소집, 우리측 체류인원의 전원철수라는 강경카드를 꺼내들었다.

근로자 전원철수는 사실상의 폐쇄수순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금강산 관광 중단 사태 당시 그랬듯이 일단 우리측 근로자가 철수하면 북한은 개성공단의 남측재산을 몰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박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때도 유지됐던 개성공단이 문을 닫게 된다면 박근혜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원점부터 재고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될 수 있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그대로 고수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개성공단이 갖는 상징적 의미가 상당하지만 어디까지나 남북관계를 이루는 한 요소이기 때문에 체류인원 전원철수 조치도 그에 국한된 것일 뿐이라는 해석이다.

박 대통령이 이날 유라시아지역 국가의 주한대사들을 접견한 자리에서 과거 수차례 핵실험 및 장거리 미사일 보유에도 불구하고 이를 포기한 카자흐스탄의 사례를 북한이 본받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도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

특히 박 대통령은 "북한도 카자흐스탄의 경험을 귀감으로 삼아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됨으로써 주민의 생활수준이 개선되기를 희망한다", "올바른 선택을 하는 방향으로 변화될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일관되고 단결된 목소리로 전달해나갈 필요가 있다" 등 계속해서 북한의 '변화'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던졌다.

정부가 체류인원 전원철수 결정을 발표하면서도 '폐쇄' 가능성은 언급하지 않고 우리 국민의 신변보호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점을 강조한 것도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 여지를 남긴 것이란 분석이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이번 조치의 배경에 대해 "북한의 부당한 조치로 개성공단에 체류하는 우리 국민의 어려움이 더 커지고 있는 바 정부는 우리 국민 보호를 위해 잔류 인원 전원을 귀환시키는 불가피한 결정을 내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번 결정은 식자재와 의료품 등의 반입금지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개성공단내 우리 국민을 위한 인도적 차원의 조치일 뿐 대북정책의 틀과는 관련이 없다"며 "박 대통령의 대북정책 기본은 여전히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달성"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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