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떠도는 공무원 노숙자를 아십니까·

 ▲ ⓒ경향일보▲ ⓒ경향일보

지난해 12월 국회 인근 24시 사우나에서 만난 한 남성은 지난 국정감사에 이어 예산 심의를 위해 세종청사에서 온 부처 공무원이었다.

서울에 갈 곳이 없어 한 달째 이렇게 사우나와 찜질방을 떠돌며 노숙자처럼 서울을 배회하고 있다며 자기와 같은 세종청사의 공무원들이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세종시로 가족과 함께 이주한 지 약 1년이 되는 A씨는 소관 예산에 대한 국회 심의를 위해 20여 일을 직장인 세종청사와 서울을 매일 오가야 했다.

매일 아침 상임위 회의 때 배석하기 위해 새벽 5시에 일어나 세종시에서 오송역까지 급히 마련한 자신의 차량을 타고 이동해 6시 반 KTX를 타고 서울 여의도 국회로 간다.

국회에 도착하더라도 여야가 합의에 실패하면 상임위가 연기되며 무작정 기다리는 신세가 된다. 그러나 정작 사무실인 세종청사에는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이고 언제 상임위가 다시 열릴지 모르기에 우선 광화문 서울 청사에 있는 스마트 워크(Smart work) 센터로 자리를 옮긴다.

스마트 워크(Smart work)는 최근 정부와 기업에서 도입하고 있는 시스템으로, 모바일 오피스나 재택근무, 유연 근무제를 통해 '똑똑한 근무환경'을 만들어 일의 효율성을 높이자는 취지에서 개설된 공간이다.

하지만 예산 심의는 끝내 잘 풀리지 않고 성과 없이 이날도 서울역에서 세종시로 향하는 11시 반 막차를 타고 내려가야 했다.

다음날 같은 동선을 반복하며 국회로 왔지만 상황은 변함이 없다가 극적으로 상임위가 열렸지만 한 시간만에 다시 정회된다.

정회된 사이 의원실에서 온 자료요구와 서면질의 답변 준비를 위해 이곳저곳을 오가며 직원들과 자료를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막차 시간인 11시 반이 다가오면서 자료요구는 끊이지 않고 마음은 급하지만 귀가 걱정을 뒤로한 채 당장 코앞에 닥친 불을 끄기 위해 자료 작성에 총력을 기울인다. 결국 예상대로 막차를 놓치고 새벽 2시에 걸어서 국회를 나선다.

일부 직원들은 서울에 갈 곳이 있어 돌아가지만 갈 곳이 마땅치 않은 A씨는 집이 있는 세종시로 갈 수도 없어 새벽 거리의 편의점 앞에서 자판기 커피를 입에 물고 휴대전화로 인근 사우나와 찜질방을 검색한다.

출장비가 부족한 탓에 숙박비가 부담스러워 가까운 찜질방이나 사우나에서 쪽잠을 청하지만 피곤함에 지쳐있는 몸은 쉽게 잠을 허락하지 않아 뒤척이다 결국 1~2시간 정도의 눈을 간신히 붙이고 다시 국회로 향한다.

이날도 국회에서는 여전히 예산 심의가 열리지 않고 파행을 지속하면서 고된 하루하루가 지나간다.

이런 생활이 20여 일간 지속되면서 몸과 마음도 지쳐가지만 직장이 서울인 배우자를 생각하면 이런 상황을 투정할 수도 없다. 오히려 세종청사 내 어린이집에 맡겨진 아이들이 걱정돼 출퇴근길을 뛰어다닐 아기 엄마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또 한편으로 부인이 직장을 그만두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지만 막상 세종시로 이주하면서 늘어난 생활비며 각종 비용에 대한 부담이 고스란히 남기 때문에 그 결단을 미루고 미뤄 벌써 1년을 넘기고 있다.

그뿐인가. 자녀들에 대한 관심도도 서울에 있을 때보다 현저히 떨어지면서 애초 아이들 교육으로 기대했던 '스마트 교육'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A씨와 그의 가족은 세종시로 이주한 걸 후회한다. A씨는 "내가 노숙자인??라며 입을 연다. "그냥 서울에 있었더라면, 어차피 이렇게 매일 서울을 오갈 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세종시로 이주할 필요는 없었지 않았나 싶다"라며 답답하다는 표정을 보인다.

하지만 그 조차도 이제 다시 돌아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을 잇는다. "자녀들의 전학도 문제지만 무엇보다도 얼마 전 헐값에 서울 집을 팔았기 때문에 그 돈으로 다시 서울에 집을 구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이유를 설명한다.

그 외에도 인터뷰에 응한 몇몇 공무원과 가족들은 여러 유형의 고통을 호소했다. 특히 ‘배우자의 우울증’ ‘아이들의 교육’ ‘친구·가족들과의 멀어짐’ ‘문화생활 부족’ ‘병원 등 인프라 문제’ 등을 거론하며 총체적 난국이라고 설명한다.

한 세종청사의 공무원 가족은 "우리 신랑이 집에 들어오지 않아요. 서울에서 일이 끝나도 차가 없어 올 수도 없고 와도 2~3시간 자고 또 가야 한다니까요. 그래서 요즘은 거의 노숙자처럼 찜질방을 떠돌아 다녀요. 왜 아무런 대책을 안세우는지 이해가 안갑니다"라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지난 2012년 12월 중앙행정기관의 1단계 이전으로 약 5500여 명의 대이동이 있은 후 지난 2013년 12월 27일까지 2단계로 교육부 등 6개 부처와 10개 소속기관에서 4800여 명이 세종청사로 2단계 이주를 마쳤다.

이로써 17개 중앙행정기관 중 13개 기관이 세종시에 자리 잡게 되면서 세종청사에 근무하는 공무원의 수는 1만여 명에 이르게 됐다.

■ '시사 할(喝)'은 = 앞으로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잘못된 제도나 문화 등을 비판하고 우리 사회가 공공성을 회복하는 데 기여하기 위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려고 신설한 기획이다. 할(喝)이란 주로 선승(禪僧)들 사이에서 행해지는 말로,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꾸짖는 소리다.

저작권자 © 전국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