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수연 기자

자살은 사람의 생명을 죽인다는 점에서는 살인행위다. 다만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는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자살이란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이 해마다 늘고 있다는 정부 발표가 나왔다. 통계청이 얼마 전인가 내놓은 자살실태를 보면 1만5413명이 자살했는데 하루에 42명 꼴이고 인구 10만명당 31명으로 부끄러운 세계1위의 자살국가다. 한국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몸을 훼손하지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라는 유교 전통국가다, 여기에 현대종교 모두가 자살을 절대 금하고 있는데 자살이 왜 급증하고 있는가 10대 자살은 한해전보다 42%, 30대는 28%가 한해에 증가 사망원인 1위가 되었다니 심각한 문제다, 자아가 형성되지 않은 청소년과 한참사회활동에 열중해야할 청, 장년들이 왜 이렇듯 목숨을 가벼이 여기는가, 그 원인은 무엇이고 앞으로는 또 어떻게 될까? 자살은 당사자의 사정이라 할수있지만 이들을 자살로 내모는 것은 사회적 환경이다, 살맛나지 않는 세상이 자살을 조장하고 있다. 삶이란 온갖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이 장애물을 넘다가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기 어려운게 우리사회다, 패자부활전이 없는 사회시스템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10대 자살은 부모의 도를 넘는 질책과 강요, 폭력, 결손가정 등 으로 순간적 충동에 의한 것이다. 고공행진을 보이고 있는 노인자살은 복지사각지대에서 가정윤리파괴, 고독과 질병을 이겨낼 수 없는 좌절감이 원인이다, 20~30대 자살증가는 높은 실업률, 팍팍해진 세상을 헤쳐나갈 자신감 상실에 있을 것이다, 결국, 가정, 사회, 국가가 자살자가 늘도록 방치하고 있는 셈이다. OECD는 지난해 발표한 회권국 사회경제적 불평등에 있다고 했다. 보건복지부는 자살로 인한 사회적 손실이 년간 1조3천억원내지 3조1천억원이라고 지난해 발표했지만 정책 차원의 자살예방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자살충동을 받을때는 최악의 절망감에 빠졌을때다, 절망이라 생각하면 헤쳐나갈 길이 보이지 않는다, 분명한 길이 있지만 이를 보지 못한다, 길이란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만 나타나기 때문이다. 우리 속담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라고 한 것은 절망은 없다 죽을 각오로 길을 찾아내면 길이 있다는 뜻이다.

인간사회 승부에서는 승자와 패자가 있기 마련이다, 상생의 길을 찾지 않고 승부결판을 내려 하는게 우리사회의 병폐로 고질화 되어있다.

그러다보니 앙탈과 악다구니가 판을 치고 있다.

인생의 참된 승자는 자신의 능력밖 탐욕을 뿌리 칠줄 알고 고독과 슬픔을 이겨내는 사람이다.

당나라 시인 ‘백낙천’은 태평로란 시에서 “인생행로는 참으로 어렵다, 물이 깊어서도 아니고 산이 높아서도 아니다, 다만 사람의 마음이 변덕스럽고 인정이 각박해 믿을수 없기 때문이라”라고 했다. 실존철학자 “야스퍼스”는 고뇌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한계상황“이라 설파했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삶이란 방정식 해답은 자신을 알고 지혜롭게 사는 것이다.

우리 옛말에 ‘빨리가려면 혼자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했다.

인생은 짧다고 하지만 그래도 길다, 혼자 빨리 달리다가 넘어지면 일으켜 줄사람이 없다, 자살율이 높아지는 것은 모두 함께 앞으로 가는것보다 어렵고 고뇌하는 사람을 못본채 낙오시키는데있다, 자살율 세계1위란 한국인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 사회경제적 불평등국가라고 OECD지적까지 받고있지 않는가, 정부는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한 장기적 대책과 당장이라도 자살예방 상담소를 곳곳에 설치,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길이 있음을 가르켜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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