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방보훈청 보훈과 박재남

빚이란 남에게 갚아야 할 돈이나 은혜, 즉 부채를 뜻한다. 한편 자산은 개인(혹은 법인)이 소유하는 토지·건물·기구·금전 등을 총칭한다. 때문에 자산이 정(正; 플러스), 빚은 부(負; 마이너스)의 속성을 지니는 것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경제학에서는 ‘자산=자본+부채’의 공식이 널리 받아들여진다. 즉 부채도 자산에 포함된다는 것인데, 이는 부채가 상환되기 전까지는 자본과 마찬가지로 개인에게 이익이나 효용이 되는 밑천으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부채는 항상 마이너스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닌데, 아래에서는 부채가 오히려 플러스로 작용하는 특별한 사례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6·25전쟁의 발발로 대한민국이 존망의 기로에 놓이자,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는 촌각을 다투는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대한민국과 세계의 평화를 위해 참전하자는 결의에 따라, 6월 27일 미국을 시작으로 21개국이 병력 혹은 의료인력을 대한민국에 보내 주었다. 이들은 국군과 전장의 수많은 역경을 함께하며 대한민국을 지켜냈고, 정전협정 이후에도 다년간 주둔하면 대한민국의 안전을 보장해 주었다. 이 과정에서 함께 일구어 낸 기적적인 승전과 미담들은 서로의 기억과 역사에 아름답게 남았지만,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21개 유엔 참전국에 크나큰 빚을 지게 되었다.  

전쟁은 유엔참전국 195만 용사들로 하여금 고향을 떠나 전장의 고통을 감내하게 했다. 4만여 명의 전사·실종자를 포함한 13만여 명의 유엔참전용사가 희생되어야 했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을 대한민국으로 떠나보내야 했던 가족들에게 전사 통지는 실로 가혹한 것이었다. 이들의 희생은 비단 남침을 격퇴해 대한민국을 존속하도록 한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어려운 과정에서 수많은 희생을 치르면서 자유와 평화 그리고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일깨워 주었다. 공적 원조와 더불어 대한민국의 앞길을 응원했던 수많은 참전용사들의 존재는 전재의 폐허만 남은 우리나라에 큰 힘이 되었다.    

 유엔참전용사의 바람처럼 대한민국은 놀라운 발전을 거듭해 이른바 ‘한강의 기적’을 일구었다. 양적 성장은 물론 G20의 반열에도 들었다. 또한 2010년부터는 OEDC 개발원조위윈회에 가입함으로써 수원국(受援國)에서 공여국(供與國)이 되었다. 유엔참전용사들에게 진 빚을 갚고자 하는 국가 차원의 조치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진 것 또한 이 즈음이었다. 참전용사 재방한 사업의 확대, 참전기념물 건립, 참전용사 후손을 대상으로 하는 장학사업과 보훈캠프, 일부 참전국에 대한 공적 원조 등 다양한 국제보훈사업이 실시되고 있다. 

물론 국제보훈은 국가의 예산 지출이 수반된다. 하지만 국제보훈은 지난날의 희생, 그에 대한 ‘오늘의 은혜갚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국제보훈의 대상에는 참전용사 본인은 물론 그 후손도 포함된다. 더 나아가 대한민국이 지난날의 희생을 기억하고 감사한다는 사실을 전함으로써 참전국 국민 전체에까지 ‘은혜를 잊지 않는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심어준다. 때문에 ‘오늘의 은혜갚음’은 ‘미래의 동반자적 관계’ 즉 대한민국의 든든한 우방국을 만드는 일이 된다. 국제보훈에 소요되는 다소간의 비용이 전혀 아깝지 않은 이유이다.  

혼자서는 생존할 수 없는 글로벌(Global) 시대를 맞이하여, 없던 관계라도 만들어 국가 간 관계를 맺고자 하는 지금, 우리나라는 매우 가치 있는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유엔참전용사와 그 국가들에 지고 있는 크나큰 빚이다. 이 빚이 있기에 우리는 국제보훈을 통해 유엔참전국에게 전쟁으로 맺어진 인연을 지속적으로 상기시키고, 이를 국가 간의 외교관계 설정에 매우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다.    

이번 11월 11일의 ‘부산을 향하여(Turn Toward Busan)’ 국제 추모행사 또한 표면상으로는 유엔참전국과 그 용사들에게 빚을 갚는 행위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를 포함한 21개 유엔참전국이 일제히 67년 전 6·25전쟁에서 전사한 유엔참전용사들이 안장된 부산 유엔기념공원을 향한 추모행렬에 동참하는 것은 6·25전쟁을, 그 속에서 지켜진 자유와 평화를, 그 과정에서 피로 맺어진 끈끈한 인연을 되새기는 일이 된다. 따라서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67년 전 유엔참전국에게 진 빚은 국제보훈을 통해서 대한민국의 소중한 외교적 자산이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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