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소방서 119구조대장 장인수

지난 여름 난생 처음 민원을 제기 받은 일이 있었다. 환풍구에 빠진 고양이를 구조하러 간 일이 있었는데, 환풍구 크기가 좁을 뿐더러 깊이가 상당했다. 로프를 타고 내려가려고 해도 벽면의 장애물로 부상 위험성이 높아 결국 구조를 하지 못했던 사안이었다. 아마도 민원인은 좀 더 적극적인 구조 활동을 통해 고양이가 구조되기를 바랬으리라. 그 분이 올린 글에는 구조대에 대한 실망과 함께 ‘119가 못하면 도대체 누가 할 수 있겠냐’는 하소연이 적혀 있었다. 

그 글을 읽으며 속으로 자문하여 보았다. ‘다른 구조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민원인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게 좀 더 소통을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내 아쉬움과 함께 죄송한 마음이 밀려들었다.

현장에 나가면 119에 대한 높은 신뢰와 기대를 느끼곤 한다. 그것은 그 동안 열과 성을 다해 재난과 싸우고 생명을 구했던 많은 선배 소방관들의 피와 땀의 결과로써 ‘주어진 것’일 뿐 영원히 누릴 수 있는 명성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마치 챔피언 벨트와 같아 과거에 안주해 자기 관리를 게을리 한다면 언제든지 박탈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맹자 ‘이루상(離婁上)’에 이런 글이 있다고 한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으리라’는 아이들의 노래를 들은 공자가 ‘자네들 저 노래를 들어보게. 물이 맑을 때는 갓끈을 씻지만 물이 흐리면 발을 씻게 되는 것이다. 물 스스로 그렇게 만든 것이다.’

갓끈을 씻던, 발을 씻던 그것은 물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흐린 물에는 존경의 상징인 갓끈을 씻지 않듯이 지난 날의 영광에 심취한 채 성찰(省察)과 수신(修身)하는 자세가 없는 공직자와 조직은 신뢰는 커녕 조소와 천대를 당할 뿐이다.

‘119가 못하면 도대체 누가 할 수 있겠냐’는 말은 질책인 동시에 인정(認定)의 말이다. 그런 말을 듣기까지 성의와 진심을 갖고 자기 임무에 충실했던 한 명 한 명의 소방관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하겠다. 동시에 그 말을 빛바랜 영광으로도 만들 수 있는 이 또한 한 명 한 명의 소방관임을 명심해야 하겠다. 그 한 명이 혹시 나는 아닐런지 다시 한 번 경계하며 부끄러움 없는 구조 활동을 하리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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