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중앙회장 김병원

얼마 전 서울 상암동에서는 농업인과 자원봉사자 등 200여명이 모여 1만포기의 김치를 담그는 장관이 연출됐다. 독거노인과 복지시설 등 소외계층에게 김치를 전달한다는 보람 때문인지 ‘국민행복나눔 김장축제’ 내내 참가자들 얼굴에는 웃음이 묻어났고, 오랜 전통인 김장문화를 알린다는 자부심도 가득해 보였다. 농업인들이 땀 흘려 키운 우리 농산물로 이웃 간 따스한 정을 나누고 건강을 챙기는 모습에서 농업의 가치를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일시적인 수급 불안에 ‘금배추’ ‘금상추’ 같은 표현으로 농산물을 물가 상승의 주범으로 지목하거나, ‘농업은 생산성이 낮다’ ‘국가경제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농업인의 한 사람으로서 아쉬움과 함께 농업에 대해 여전히 적지 않은 오해가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나아가 농업의 소중한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움을 느끼곤 한다.

이런 오해들은 말 그대로 오해일 뿐이다. 1980~90년대 고도 경제성장기 시절, 농업 분야 희생의 바탕 위에서 비농업 분야가 비약적으로 성장하며 생긴 편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1990년대 우루과이라운드(UR) 협정 이후 농산물 시장 개방의 충격 속에서도 농업은 꾸준히 성장해 왔다. 농업생산액은 44조5188억원으로 지난 20년간 70.5%, 연평균 2.8%씩 성장했다. 통계를 보면 1990년 이후 농업부문 노동생산성은 4배, 토지생산성은 2배 높아졌고, 농업생산성이 비농업 부문보다 빠르게 증가하여 농업과 비농업 부문 간 생산성 격차도 크게 줄고 있다.

또 혹자는 국내총생산(GDP)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2%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농업 선진국인 미국(1.3%)과 프랑스(1.7%), 캐나다(1.5%)보다 높은 것을 감안하면 우리 농업의 국민경제 기여 정도가 결코 작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민경제 전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부가가치유발계수도 농업이 0.842로 자동차(0.689)나 컴퓨터(0.568)보다 높다. 농업이 다른 산업 성장에 미치는 효과도 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울러 농업은 먹거리 생산이라는 본원적 기능 이외에도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공익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유사시 식량안보는 물론이고 아름다운 농촌 경관과 생태환경을 보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수자원 확보와 홍수 방지, 지역사회 유지와 전통문화 계승에도 큰 몫을 해내고 있다. 도시민의 62.1%가 이러한 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을 인정하고, 절반 정도가 농촌에서 살고 싶다고 답한 설문조사 결과도 있을 만큼 농업·농촌은 우리의 후손에게 길이 남겨주어야 할 소중한 자산이 아닐 수 없다.

수천년을 이어오며 민족의 혼이 깃든 소중한 농업을 지키기 위해 농협은 ‘농업가치 헌법 반영 1000만명 서명운동’을 펼치고 있다. 농업 선진국 스위스처럼 농업의 공익적 가치와 국가의 지원 의무를 헌법에 반영하자는 것이다. 어려움도 많았지만 이제는 정·재계와 시민단체, 일반 대중에게로 공감대가 확산되어 한 달 만에 목표한 1000만명이 훨씬 넘는 국민들이 서명에 동참해 주셨다. 눈물나도록 기쁘고 감사한 일이다. 많은 이들의 간절한 뜻이 모여 농업의 가치가 헌법에 반영되고, 5000만 국민 모두가 마음의 고향인 농업·농촌에 담긴 소중함과 애틋함을 더 많이 품고 아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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