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동현 영남취재본부 국장

보존의 가치가 인정돼 세계 유네스코에 등제된 경주시안강읍 강동들판의 그 아늑한 산자락에 고요하게 자리 잡은 양동 민속마을.  때로는 켜켜이 쌓인 마음의 먼지를 말끔히 털어내지 못해 답답할 때면 나는 항상 이곳을 찾곤 했다. 딱히 눈길 끌만한 것이 있어서도 아닌데도, 그저 옛것을 보게 되면 가슴이 뻥 뚤리는 것 같아 가끔 이곳을 찾게 된다. 

대보름을 맞아 어머님을 위해 뭔가 빌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모랑마을에 봄이 왔을 때 90평 밭을 보시하고/ 향령(香嶺)에 가을이 오니 만금(萬金)을 거두었다./ 어머니는 백년 사이 가난과 부귀를 겪었는데/ 재상은 한꿈 사이 삼세(三世)를 오갔구나.’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 효선편에서 찬송한 시문이다.

경주 근처 모량리 마을에서 가난하게 살던 김대성이 고용살이로 얻은 밭 90평을 보시한 공덕으로 후일 다시 태어나 재상의 복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내일은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인 보름이다. 보름에는 덕담을 나누며, 복을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나누는 것이 우리들의 미덕이다. 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곳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것일까 2018년을 맞아  총선 대선이 화두가 되고 있다.

년초에는 가끔 몇 수십억원짜리 복권에 당첨되는 사람들이 나타나 부러움을 사기도 한다. 이런 행운에 대한 동경 때문인지 복권이 불티나게 팔린다고 한다. ‘행운을 기대하느냐, 모래로 밥을 지으려는 것과 같은 짓이다. 덕이나 차곡차곡 닦으려무나.’ 공덕 쌓기는 게을리 하면서 행운을 기대하는 제자에게 던진 스승의 한마디다. 나무 할머니 김은주, 버선 할머니 이순옥, 폐품 할머니 장경자, 대원각 할머니 김영환, 옷장수 할머니 김선용, 젓갈 할머니 유양선, 바느질 할머니 손성찬, 콩나물 할머니 임순득, 임대업 할머니 조명득 할머니 등 몇해전 한 일간지에 한꺼번에 소개된 이들은 모두가 한평생을 덜 먹고, 덜 입으면서 모은 수억에서 수백억되는 재산을 장학금으로 내놓거나 자선단체 등에 기부한 할머니들이다. 

미국 오리건주의 고든 엘우드는 사람은 지난해 10월 숨지면서 자선단체 네곳에 거금 900만달러를 기부해 소문이 났다. 그는 난방이 되지 않는 집에서 살면서 슬리핑백에서 잠을 자고, 버려진 병이나 깡통을 모으며 살았다고 한다. 이렇게 모은 돈을 정유회사 등에 투자, 큰돈을 벌게 됐다고 한다. 주위 사람들은 남을 위하는 그의 마음이 그에게 행운의 열쇠를 가져다주었다는 평가다. 이들은 모두 행운의 씨앗을 생활 가운데 심으며 살아온 사람들이다. 나도 저들을 닮고 싶은 마음이라면 과욕일까? 행운을 바라서는 더욱 아니다. 지친 내 마음 풀어놓으려 찾아가는 길에 정초한파의 기세가 더욱 기세다. 

군데군데 물 새떼가 오종종한 형산강을 지나, 야트막한 산을 돌아, 끊길 듯 이어지는 길을 따라 다시 이어지는 곳에 조용히 앉은 마을. 아직도 밥 짓는 연기가 굴뚝을 오르고 소여물 냄새가 물씬 풍기고, 담벼락 아래 장작이 옹기종기 쌓인 곳. 제멋대로 만들어진 웅덩이 하나만한 논들. 꽃보다 화려한 비탈이 있는 곳. 끝없이 펼쳐진 대나무숲의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내 좁은 마음을 달래준다. 여기서 끝인가 싶은 좁은 마을길을 돌아 작은 계곡을 끼고 좀 더 가면 산 아래 소란함 하나 없이 자리 잡은 한눈에 환하게 들어오는 저수지. 언제부터였는지 그저 소박하게 저 아래 마을을 말없이 내려다 보며 조용한 햇살 맞으며 저수지를 지키고 계시는 부처님 한분, 어딘가 비밀스런 기운을 내뿜고 있는 오래된 부처님이시라 경외함이 가득한곳이다, 하여 무엇이든 원하면 이루어 주실 것 같은 어머님을 닮은 듯한  인자함이 있는 곳이라 더욱 좋다. 

이제 대보름 명절을 맞아 고향을 찾으려는 이들의 발길들이 분주해질 것이다, 그래서 이곳은 내게 있어 고향이라 딱히 이름 붙이고 싶을 정도로 자랑스러운 곳이다. 잔잔한 저수지를 박차고 사정없이 하늘을 뚫고 오르는 놀란 청둥 오리떼들, 어느 먼 동토에서 이곳까지 잠행 했는지 경외스럽다. 미물들이레도 좋은 곳은 더욱 잘 아는 것 같아 철새들이 부럽기까지 하다. 90평의 밭을 보시한 공덕으로 다시 태어날 때 재상의 행운을 받은 김대성처럼. 그들이 행운을 바라서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홍수에 떠내려가는 개미떼를 구해준 공덕으로 찌그러진 얼굴이 장군처럼 늠름한 모습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행운을 가져오는 복(福)의 실타래는 실오리를 눈으로 쉽게 찾을 수 있는 구조는 아니다. 그러나 해와 달보다도 더 분명한 것은 바로 이것을 행운이라고 하니 새해 명절의 덕담을 공덕 쌓는 말들로 시작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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