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인 편집국 제2사회부 국장

청와대는 지난 20일 '대통령이 발의할 개헌안 내용 중 헌법 전문과 기본권 부분을 나눠서 공개했다. 일부를 공개했다. 헌법 전문과 기본권 관련 개정안이다. 21일에는 지방 분권 관련 부분, 22일엔 대통령 권한 부분을 발표 했다. 청와대가 사흘에 걸쳐 국민에게 설명하는 과정을 거치고 나면 문 대통령은 26일에 개헌안을 발의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이미 다 마련돼 있는 개헌안을 이런 식으로 쪼개서 발표하는 것은 개헌안 공개의 진짜 의도를 보여준다. 정말 개헌하자는 것이 아니라 일대 '쇼 이벤트'라는 여론이 일고 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는 개헌안을 조문(條文) 형태가 아니라 어떻게 바꾸겠다는 식의 보도 자료 형태로 공개했기 때문이다. 헌법 조문은 글자, 수식어, 심지어 토씨 하나에도 의미와 파장이 달라진다. 청와대는 지금껏 개헌안 조문과 내용에 대해 공청회 한번 한 적도 없다. 정말 개헌이 되게 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이럴 수 없다는 여론이다. 그래 놓고 야당이 거부하면 '반(反)개헌 세력'으로 비판하겠다는 것이다. 조국 민정수석이 발표한 헌법 전문에는 부마항쟁과 5·18 민주화 운동, 6·10 항쟁 등 3가지 민주화 운동의 이념이 담겼다. 국민 발안제,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신설 등 국민주권 강화 방안도 포함됐다. 그리고 ‘근로’라는 용어를 ‘노동’으로 수정하고 ‘동일가치 노동, 동일 수준 임금’의무도 명시했다. 

군인 등을 제외한 공무원에게 노동 3권을 부여한 것에는 친노동 개헌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공무원 단체행동권 보장을 통한 권익 신장도 좋지만 남북 대치 현실과 불안한 안보 상황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여론이다. 청와대헌법 전문에서 5·18 등 3개 민주화운동을 추가한 것은 지방선거와 민심을 의식해 지역 균형을 맞춘 느낌이 없지 않다. 과유불급이다. 현행 헌법에서 명시된 3·1운동, 임시정부 법통, 4·19민주이념만으로도 부족한가. 이런 식의 접근은 불필요한 이념 논란에 불을 지필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번 개헌안에서 기본권의 주체를 ‘국민’에서 ‘사람’으로 확대했다고 밝혔으나 문재인정부가 주창하는 ‘사람 중심’ 철학을 헌법에 끼워 넣었다는 비판도 있다. 헌법에 특정 정권의 이념이나 철학을 반영하려는 시도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번 개헌안 발의의 주체는 정부나 청와대가 아닌 ‘대통령’이라는 것이다. 당연히 문 대통령이 나서서 국민 앞에 설명해야 옳을 것이다. 그러나 수석비서관이 나서서 우리의 민주체제를 재정립할 헌법을 놓고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격에 맞지 않는다. 더구나 청와대가 세 번으로 나눠 설명하는 것은 대국민 설득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전략으로 읽힌다. 높은 지지율을 등에 업고 여론전으로 야당을 압박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한다.

대통령 개헌안 발의권은 행정부 수반이나 정파 대표가 아니라 국가원수 자격으로 헌법이 부여한 권한이다. 그에 맞게 국가와 국민을 통합하는 방향으로 행사해야 한다. 그러나 자기 편과 개인 취향에 맞춰 발의권을 행사하는 것이야말로 이번 개헌을 통해 바꾸고자 하는 제왕적 대통령의 전형적 모습이라는 여론이다.

헌법은 그 유래 자체가 국회에 속하는 것이다. 개헌도 입법기관인 국회가 하는 것이 마땅하다. 대통령의 개헌 발의 강행은 국회의장이나 여당 중진 의원들조차 반대해왔다.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은 물론이고 문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다는 정의당조차 반대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청와대는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진심으로 개헌하려는 것이 아니고 '하는 척'을 하겠다는 것으로 국민들은 여론을 모아 가고 있는 것이다. 탄핵이란 국가적 비극과 위기를 통해 제왕적 대통령제를 고치자는 국민적 염원이 이런 식으로 변질되는 것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큰 책임은 국회에 있다. 지금이라도 여야는 밤을 새워서라도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꾸고 지방자치를 확대하는' 개헌안에 합의해 6월 지방선거 이전에 국민 앞에 제출해야 한다. 개헌이 돼도 현 정권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민주당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개헌을 위해선 '제왕적 대통령제와 지방자치외에 어떤 논란거리도 추가로 만들지 않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도 일이야 한다.

한편, 5·18 등의 민주이념도 전문에 넣기엔 시기상조다. 헌법 전문은 헌법의 기본원리를 규정할 뿐만 아니라 규범력도 갖는다. 현행 헌법 전문은 손 댈 필요가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기본권 조항 역시 개정이 절박하지 않다. 청와대가 내세우는 생명권, 안전권, 정보기본권 등은 현행 헌법의 행복추구권과 양심의 자유 등으로 보장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청와대의 움직임은 정략을 감춘 ‘쇼통’의 심증만 굳게 한다. 

이러고서야 모처럼 찾아온 시민 참여 개헌의 기회를 살릴 수가 없다. 문 대통령은 진정성 있게 한국 사회 전체를 보고 개헌에 다가가야 한다. 6월 처리를 걸고 야당 압박용으로 추진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여론이다. 개헌은 국회에서 야당들과 같이 개헌 테이블에 앉아서 개헌 실현을 위한 논의로 거쳐 국민의 지지를 받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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