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시 문화체육관광과 문화팀장 신현만

독산성과 세마대지는 1964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140호로 지정되었다. 독산성 꼭대기에 세워진 세마대는 일제강점기와 6.25를 거치면서 파괴되었다가 1957년 민관으로 구성된 ‘세마대 중건 위원회’에 의해 복원되었으며, 성곽은 1979년부터 2010년까지 지속적으로 보수정비 해왔다.

독산성은 삼국시대 백제에 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에도 지속적으로 이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록에 따르면 임진왜란 중인 선조 27년(1594)에 경기도 관찰사 유근이 백성들과 함께 4일 만에 고쳐지었으며, 임진왜란 이후 선조 35년(1602년)에 방어사 변응성이 다시 석성으로 수축하였다. 정조 16년(1792년)에는 큰 규모로 개축하여 오늘에 이르렀고, 성문에 4개와 암문 1개가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독산성은 군사기지로서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으나 성내에 물이 없는 단점이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권율 장군은 한양으로 향하는 왜군을 저지하기 위해 이곳에 진을 치고 있었는데 왜장은 벌거숭이산에 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포위하여 압박함으로서 스스로 자멸을 기다렸다. 이때 권율장군은 독산성 꼭대기에 말을 세우고 쌀을 부어 씻게 하였고 이를 본 왜군이 성내에 물이 많은 것으로 알고 퇴각하였다고 하는 세마병법의 지혜가 남아있는 관방유적이다.

또한 정조가 화산 자락에 있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인 융릉을 통치기간동안 13번 행차하였는데, 특히 1790년 2월 행차 때에는 독산성에 남겨진 사도세자의 흔적을 확인하고자 친히 독산성에 올랐다. 이때 정조대왕은 말을 타고 서문으로 올랐으며, 서문에서 가마로 갈아타고 독산성 안 남쪽에 있던 운주당이라는 곳으로 갔다고 전해진다. 30년 전 사도세자가 친히 접견한 성안의 부로들을 만나 아버지 사도세자가 했던 방식으로 쌀과 옷감을 하사하고 삶의 어려움이 없는지 헤아려 물어보며, 아버지를 눈물로 추억했다고 한다.

이렇듯 독산성은 왜적을 물리친 중요한 관방유적이면서 정조의 효심을 엿볼 수 있는 유적이기도 하여 국가를 위한 충과 부모를 위한 효심이 중첩된 귀한 문화재이다. 이러한 독산성의 의미를 되새기고 많은 시민과 관광객이 찾아올 수 있도록 오산시에서는 독산성 종합정비계획을 세워 추진하고 있다.

첫째, 기존 문화재구역 지정 시 성내부가 문화재 구역에서 빠져 있어 문화재 보존 관리상 불합리한 점이 제기되어 구역 면적을 37,985㎡에서 75,254㎡로 오산시 요청에 따라 문화재청에 의해 확대 고시되었다. 

둘째, 시민들이 독산성에 올라 문화재 관람시 독산성의 유래와 성곽의 설명을 알기 쉽게 볼 수 있도록 문화재청의 표준 메뉴얼을 따라 14개소의 안내판 및 이정표를 일제 정비하였다. 

셋째, 독산성을 내방하는 관광객들이 편리하도록 경사도가 있는 탐방로를 중심으로 300m를 일부 계단을 조성하고 야자매트를 설치하였다.

넷째, 성벽 내외의 39,870㎡에 이르는 면적에 대하여 위험수목 및 잡목, 잡초를 제거하여 깨끗하고 안전한 환경을 조성하여 시민들이 안전하게 탐방하도록 하였다.

다섯째, 독산성 입구에는 900여평의 넓은 주차장을 조성하여 독산성을 찾으시는 모든 시민과 관광객들이 편리하게 주차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뿐만이 아니라 우리시의 자랑인 시티투어의 중심관광지로서 친절한 문화해설사의 안내로 2018년 상반기에만 1,000여명이 방문하여 독산성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하기도 하였다.

앞으로도 오산시는 독산성의 지속적인 복원과 관리를 통해 충과 효의 뿌리를 되새겨 볼 수 있는 오산의 국가지정문화재로 키워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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