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記者

작년 구월에 구월산을 지났더니 

올해 구월에 또 구월산을 지나네.

해마다 구월에 구월산을 넘다보니

구월산 경치는 언제나 구월일세.

동에는 금강산이 있고 서에는 구월산이 있다는 말이 있는데 황해도 구월산의 경치는 구월이 절정인 모양이다. 인터넷의 사진으로라도 보는 구월산의 단풍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이 시(詩)를 쓴 해학과 풍자의 시인 김삿갓이 해마다 구월에 넘었던 그 구월산을 우리는 어느 세월에 한번 넘어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60년대부터 시작한 “김삿갓 북한 방랑기”는  KBS라디오의 최장수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한 시만 되면 향수를 울컥 자아내던 “ 눈물 젖은 두만강”의 시그널 음악에 이어 “땅덩어리 변함없되 허리는 동강나고 하늘빛은 푸르러도 오고가지 못하는구나! 이 몸이 죽어 백년인데 풍류, 인심 간 곳없고 어찌 터 북녘 땅은 핏빛으로 물들었나.” 당시 성우 오정환씨의 비장한 목소리에 이어 협동농장의 간부들을 쥐어박고 호통 치던 목소리는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잊을 수없는 추억으로 남아 있으리라. 

당시에는 “김삿갓 북한 방랑기”가 시계의 역할도 했다. 그 이후 다른 순서에서 소개된 것처럼 시골 어느 마을의 춘식이 엄마가 들밥을 해서 이고 나와 “ 춘식이 아부지 쟁기질 그만 허고 어서 점심 잡수서요!”라고 남편을 부르면 “ 아니 벌써 뭘 점심이여~ 스피카에서 김삿갓도 안나왔는디.” 라고 되묻는 것이다. “ 아 오늘 아침 이장이 동네 스피카 잠가 놓고 면사무소에 가버려서 김삿갓이 못나왔당게요.”라고 할 만큼 많은 사람이 이 방송에 시계를 맞추었었다. 

1863년 김삿갓이 세상을 떠난 지 백년이 막 지난 1964년에 시작하여 2001년 마지막 방송을 할 때까지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한 기간보다 더 긴 36년 동안 1만 회를 넘게 방송한 최장수 인기 프로그램이었다.

땅덩어리는 아직도 동강난 채로이지만 “오고가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남북 정상이 부둥켜안고 포옹을 하는 모습도 보았고 단풍보다 더 울긋불긋한 모자를 쓰고 우리의 관광객들이 금강산을 구경하며 우리의 젊은이들이 금강산 해수욕장에서 수영놀이를 하는 세상이 되었다. 남북대표들이 자주 마주 앉아 대화를 하는 모습도 좋기만 하다. 어서 속히 김삿갓처럼 북한의 산하 구석구석을 마음 놓고 구경할 수 있는 세월이 속히 왔으면 좋겠다. 조정래 씨의 작품<태백산맥>에 이런 내용이 있다. 갓 결혼한 아들이 며느리를 혼자 두고 빨치산 인민군에 들어가 버려서 손자를 보지 못해 애태우는 할머니가 나온다. 하늘이 무너져도 손자는 보아야 하니까 며느리와 인민군 아들이 신방을 차리게 해달라고 중도파 지식인 손 승호 선생을 찾아와 하소연을 한다.

“ 선상님, 지가 새끼가 다섯이지만 팔자가 박복하니라고 고것 하나만 밋들이고 나머지 빗은 쪼르록허니 딸년이랑게라, 그러니 고것이 우짤 도리 없이 독자 아닌게비여, 저그 아부지 눈감기 전에 소원 풀어 디랄라고 읍는 살림에 장개를 디렸등만

아 고 미친놈이 밭에 씨 뿌리 갖고 즈그 아버지도 탁허고 지도 탁헌 아덜날 생각은 안 허고 그 오살헐노무 좌일에 미쳐갖고 쪼르륵 허니 염상진(빨치산 대장)의 뒤따라 입산을 허 부렀당게요. 즈그 아버지가 눈 번히 뜨고 죽음 시로 그놈이야 으찌 되든지 간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씨받아 아덤을 얻어라 그러드란말이요. 긍게 어쩌겄습니까 전에야 워떤 산골짝에 백혔는지 몰랐응게 애만 탔어도 인자 율어(지리 산 밑 빨치산 본거지 지명)에 있는지 다 암스로 워찌 참고 있겠는 게라. 돈이 지 아무리 존 물건이라 허드레도 사람 나고 돈 난 순차가 있데끼 사상이란 것도 사람 살자고 맹근 것임께 그 순차가 사람 담 아니겄능가요. 그렁게 좌익이다 우익이다 따지기 전에 우리 며느리가 씨는 받게 해 줘야 인간 도리고 순리가 아니겄능게라 선상님이 들어서 이 늙은 년 소원 좀 들어 주시 씨요 선상님! “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린가. 좌익과 우익이 밤낮 눈을 부릅뜨고 총을 겨누고 있는 세상에 가당케나 한 생각인가 그러나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인간의 목숨까지 좌지우지하던 이데올로기 갈등의 한복판에 뛰쳐나온 이 시골 할머니의 목소리는 그 쇳소리 나는 사상의 갈등도 한꺼번에 무너뜨리는 해학인 것이다. 그래서 여러 사람의 노력으로 결국 이 사람의 젊은 아내가 위험하게 짝이 없는 산길을 걸어 율어까지 가서 인민군 빨치산 초소에 신방을 차리고 임신을 해서 돌아 왔다는 이야기이다. 한국 동란 중에 첫 손을 꼽을 만한 해학적인 장면이다. 임어당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유머리스트 대여섯 명을 국제회의에 참가시켜 그들에게 전권을 부여한다면 이 세계는 불원장래 평화가 올 것“ 이라고 했다.

모든 국가 간의 갈등이 정치인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한바탕 웃고나면 해결되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여기에 방금 전에 인용한 지리산 밑의 할머니 같은 사람 두어 사람만 보태면 남북문제는 며칠 내에 풀릴 것 같다.

<유토피아>를 썼던 16세기 영국의 작가이자 정치가였던 토머스 부어는 헨리 8세의 이혼을 반대하다가 종교 반역자로 몰려 놓으면서 “내 수염은 잘리지 않도록 조심하소. 수염이야 무슨 죄가 있겠소.”라고 말했다. 죽음 앞에서 보이는 빌헬름 2세나 히틀러 같은 사람 얼굴에서 웃음이나 유머를 찾아낸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독재자는 대중 앞에서 절대 웃지 않기 때문이다.

헨리 와드는 “ 유머감각이 없는 사람은 스프링 없는 마차를 타고 가는 사람과 같다.” 길 위의 모든 돌멩이 위를 지날 때마다 덜컹거릴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스프링 없는 마차를 타고 자갈길을 가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뼈마디가 받치는 일인가? 복잡한 세상 나느넷 길에 얼마나 자갈길이 험한가? 뼈나 관절이 상하지 않고 살아가려면 스프링처럼 탄력 있는 마음자세 즉 유머를 갖추는 일이필요하다. 건강에는 유머가 필수이다. 18년간 웃음의 의학적 효과를 연구해온 미국의 리버트 박사는 기분 좋게 웃으며 기쁘게 사는 사람의 혈액 속에 암세포를 공격하는 티임파구가 증가해 있는 것을 확인했다. 즐겁게 살면 스트레스가 진정되고 혈액순환이 원활해져서 혈압이 안정 된다는 것이다. 

스탬포드 대학의 윌리암 프라이 박사는 몸속의 650개 근육 중에서 250개의근육이 웃을 때 작동하므로 건강에 큰 도움을 준다고 했다. 

페티우턴 박사는 “ 당신이 평화스럽게 사는 동안 질병은 악화 되지 않는다,”라고 장담을 했다. 일노일노 일소일소라고 했던가. 조세프 쿠 쉘 박사는 “웃음은 마음의 치료제일 뿐 아니라 몸의 미용제이다. 당신은 밝게 웃을 때 가장 아름답다”라고 말한다.  윌리엄 제임스 박사도 “인생은 행복하기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고 웃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다”라고 한 말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죽음을 피할 도리가 없는 절박한 상황에 빠진 한 여인을 그리스도의 기막힌 한마디가 구원해 내는 장면은 언제 읽어도 속이 후련하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있으면 먼저 돌로 쳐 보라.”

유머는 인간의 능력이 한계에 부딪혔을 때 그 상환을 훌쩍 뛰어 넘는 기술이다. 인류역사에 가장 절망적인 진퇴양난의 곤경을 이처럼 속 시원히 해결한 명구가 있을까 싶기 때문이다.

유머는 사람의 가려운 데 긁어 주는 것과 같으리라.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유머야 말로 얼마나 상쾌하고 시원한가. 태양도 날마다 싱글벙글 웃는다. 나뭇잎들은 모두가 즐거이 춤을 춘다. 새들은 쉴 새 없이 지저귀며 노래한다. 구름도 한가로이 날아간다. 만물이 모두 봉사의 법칙아래 있으므로 즐겁고 행복하다

오직 인간만이 욕심, 교만, 이기심 까닭에 웃지도 않고 즐거워하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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