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윤 한

걸음마가 익숙해질 무렵부터 
골목으로 난 길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 길이 마을을 지나 
끝없이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젊은 날, 눈보라 치던 숲길
길을 잃고 얼마나 헤매고 다녔던가
때로는 동행을 만나기도 하지만 
그것은 예정된 작별을 의미하는 것
갈림길, 누군가 길을 일러줄 때도 있지만 
판단은 오로지 혼자만의 몫이었다
돌부리에 넘어지고 강물을 만나 절망하기도 했지만 
되돌아오는 길은 없었다
시간의 통로를 따라 묵묵히 가야만 했다
한밤중, 거울에 비친 얼굴을 보며
아득하게 걸어온 먼 길 되짚어 본다
앞으로 남아 있는 거리는 얼마나 될까
지금 지나고 있는 곳은 어디쯤일까
도저히 알 수는 없지만 어쩌면 지금도
마부에 끌려가는 당나귀가 되어
협곡 사이 아슬아슬한 길을 따라
손바닥 잔주름 속 어느 지점을 
무심히 지나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

김윤한
1959년 안동 출생, 안동대 대학원 국문과 수료.1995년 《자유문학》으로 등단
시집 ‘세느 강 시대’ , ‘무용총 벽화를 보며’ , ‘무지개 세탁소’ 등
산문집 ‘6070 이야기’, 콩트집 ‘3호차 33호석’ 등
자유문학상, 한국시학상 본상 수상, 
한국자유문인협회·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 자유문학 편집동인, <글밭> 동인
                                                    <수원시인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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