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현 솔

섬마을의 그늘막으로나 서 있는
은퇴한 배를 보고 있네
기관은 녹슬어 고장이 나고
갑판에 개들이 오줌을 싸지르고 사라지는
동물 화장실이 된 낡은 배
파도소리는 귓가로 밀려오고
다시 아슴아슴 멀어지고
햇살은 늙어가기 좋게 따사롭고
천천히 죽어가기 좋게 눈부시고
일출봉은 큰 말씀으로 서서
바다로 나아가라 나아가라 하고
바람은 귓가에 몰려와서
꿈을 이뤘는지 자꾸만 물어보고
늙어가는 일이 사는 것보다 더 어려워라
꿈을 꾸지 않는 일이
꿈을 꾸는 것보다 더 어려워라
꿈속에서라도 삐걱삐걱 노를 저어보네
저 성화들을 피하는 게 상책이 아닌가

박현솔
1999년 《한라일보》 신춘문예와 2001년 《현대시》 신인상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달의 영토’, ‘해바라기 신화’, ‘번개와 벼락의 춤을 보았다’ 
시론집 ‘한국 현대시의 극적 특성’이 있음. 
2005년과 200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 수혜. 경기시인상 수상. 
현재, 계간 ‘문학과 사람’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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