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옥

거울이 생각나요
보세점에서 드레스를 입고 허리를 돌려 보죠
밑단에서 쇠굽소리가 나요
세비야, 밤을 내리치는 플라멩코 극장
집시의 조각난 삶을 쓸어 담은 적 있었죠
여인은 부러진 손톱을 들고 와서 
내게 머리를 박았어요
사람으로 맞이해도 참 좋을 여인,
말 못 할 시간이 머리털에 스며든 걸 까요
누구도 닿지 못하는 뒤쪽
나는 붉은 머리털을 둥글게 잘라내고
검은 가발을 덧씌워주었죠
얼룩진 실루엣이 무대에 서면
빗금 치는 말 같았지만  
그녀는 오색 빛의 시간을 몰라요
드레스를 말아 쥐며 옛 골목으로 들어가요
급속 해빙된 캐스터네츠 소리
어린 쇠굽에 달라붙은 희끗희끗한 악사의 호통
거울 속에는 이 빠진 사랑이 헛돌아요

* 권영옥 
  경북 안동 출생, 아주대학교 대학원 졸업 (문학박사)
  2006년 시집 『계란에 그린 삽화』 로 등단, 2006 『현대수필』 등단. 
  시집 『청빛 환상』, 시론서 『한국현대시와 타자윤리 탐구』 등.
  2006 경기문화재단 창작기금 수혜 및 2017년 두레문학상 수상. 
  현재, 서현문화의집 및 프리랜서 강사

 

키워드

#N
저작권자 © 전국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