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새벽
 
그 갈림길에서
눈[雪]이 길을 지우고 있을 때 
멈춘 자전거 한 대 

낡은 목소리의 노인은 
외로움에 지쳐 있었다 
엉겁결에 따라 들어간 오래된 집  

창호지 바른 문틈에
갇혀있던 엷고 느슨한 먼지가 가파르게 빠져 나온다 
마룻바닥이 관절을 꺾는 소리로
냉기가 발바닥을 타고 오르고 

그 순간 
스치듯 내 눈에 박힌 푸른 모과의 푸른빛
낡은 바구니에 담겨 쇠잔한 빛에 
간신히 몸을 부비고 있다 

일시 정지된 방안의 정물 
중력을 끌어안은 침묵이 일순간 내려앉는다

박제된 시간에 한 생을 끌어안고 
띄엄띄엄 박혀있는 검은 점들과  
노인의 검버섯은 고단함의 딱지처럼 달라붙어 있다  
 
부인이라며 무심히 가리킨 한쪽 구석엔 
누에고치처럼 이불을 돌돌 말고 누워
미동조차 없다  

백년 쯤 된 풍경 속
노구(老軀)와 모과는 미라가 되어가고 있다

신새벽
경북 의성 출생.  
2017년 월간문학 등단  
<수원시인협회제공>
                                          

키워드

#N
저작권자 © 전국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