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제2사회부국장 심상인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지 6개월을 넘기면서 늘어나는 구속. 압수수색 등은 적폐(積弊)청산이라는 새로운 슬로건으로 우리나라를 수사공화국으로 낙인찍히지 않을까 걱정스럽다는 여론이 아우성이다. 최근 국정원 특수 활동비를 청와대에 건넨 혐의를 받아 온 남재준·이병기 전 국정원장이 구속됐다. 이로써 검찰의 이른바 '적폐 청산' 수사로 구속된 사람은 22명으로 늘었다.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의 국정원 고위 간부들은 물론 국방장관,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대외전략비서관을 지낸 사람들도 구속되거나 출국 금지되고 있다. 

국정원·사이버사 댓글 문제부터 공영방송 장악과 연예인 출연 방해 의혹까지 10여개가 넘는 청산위원회들이 던져주는 대로 수사에 나선 결과라고 할수 있다.

지난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벌어진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사건도 수사하겠다고 했다. 국정원 개혁위가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11번째 사건이다. 말이 의뢰지 청부(請負)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검찰은 지난 16일 국정원 특수활동비 1억 원을 받은 혐의로 자유한국당 최경환 의원을 수사 중이라고 밝혔고, 그 전날엔 같은 당 원유철 의원이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를 규명하겠다며 경기 평택 지역구 사무실을 압수 수색했다. 대기업으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을 산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20일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기도 했다. 검찰은 17일 효성그룹을 압수 수색했다. 이 전 대통령의 사돈 기업으로 불린 회사다. 총수 일가(一家)의 비자금 혐의라고 한다. 최근 10년 새 효성에 대해 벌이는 세 번째 수사다. 무슨 죄를 얼마나 지었길래 이렇게 되풀이해 수사하는지 알 수 없다.

사건 하나하나마다 수사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실제 위법 혐의가 있는 사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새 정부 이후 누구를 구속하고, 체포하고, 압수 수색한 것 말고 기억나는 게 없을 지경이라고 한다. 역대 정권에서도 이렇게 했으면 이 이상으로 구속하고 체포하고 수색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도 그러지는 않았다. 무슨 일이든 지나치지 않아야 한다. 일에는 완급이 있는 법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글로벌 시대에 대한 미래 지향적인 과제들은 보이지 않고 오직 적폐청산이라는 기치아래 늘 그렇게 지나온 과거를 새삼스럽게 끄빚어 내는 듯 한 보복 정치라는 여론도 난무하고 있다. 

검찰 안에선 무려 60여 명 검사를 투입해 벌이는 적폐 수사로 인해 인력이 달리면서 민생과 관련한 사건 처리가 늦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 사정(司正)이 더해지고 기업 수사가 보태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권 차원의 보복만이 아니라 검찰이 경찰에 수사권을 넘겨주는 개혁을 막기 위해 일대 시위를 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경찰도 검찰에 뒤질세라 여기저기 파헤치고 다닌다는 여론도 만만치는 않다. 마치 '수사(搜査) 공화국'이 된 듯하다.

전 정권에서 낙오됐던 일부 인사들을 새 정부에서 보복이라도 하듯 다시 불러들여 승진을 시켜 중요 보직에 앉혀 놓고 수사와 구속. 압수수색 등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심지어 최근에 변창훈 서울고검 검사의 투신자살로 검찰은 충격에 빠지기도 했지만 수사는 계속 되고 있다. 현직 검사가 수사를 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는 처음이다. 국정원 댓글 수사 방해 의혹으로 수사를 받던 변 검사는 엊그제 법원 영장실질심사를 한 시간 앞두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적폐 수사의 대상으로 숨죽이고 있던 검찰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꾹 눌렀던 불만이 분출하는 분위기다. “정권의 하명수사 탓”이라는 비통한 목소리가 밖으로 터져 나온다.

변 검사는 2013년 국정원 댓글 수사 방해 사건에 연루됐다. 국정원 파견 검사들과 국정원 간부들이 당시 국정원 압수수색에 나선 댓글 수사팀을 엉뚱한 사무실로 안내하고, 이후 수사와 재판에서도 직원들에게 위증을 하게 했다는 의혹이다. 이 사건으로 수사를 받던 국정원 직원도 지난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현 정권의 적폐청산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국정원은 자체적으로 개혁위원회를 출범시키기도 했다. 

또한 검찰이 댓글 수사를 방해한 물증을 확보했다고 서슬 퍼렇게 나선 마당에 꿋꿋이 버틸 강심장도 없을 법하다. 적폐 수사의 코드를 맞추느라 검찰의 살아 있는 권력이 ‘죽은 권력’을 손보려고 작정했다는 뒷공론은 검찰 안팎에서 이미 무성했다. 

지금은 서울중앙지검 소속 검사의 40%가 적폐청산 수사에 매달려 있다. 누가 보더라도 상식 수준은 아니다. 문무일 검찰총장부터 자성해야 한다. 공평무사한 검찰권을 행사하고 있는지, 검찰 중립을 지켰노라고 훗날 떳떳이 말할 수 있겠는지 돌아볼 시간이라도 가져보기 바란다.

키워드

#N
저작권자 © 전국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