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경 편집국 제2사회부 국장

예전 어릴 적 배고프던 시절에는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감이 제법 괜찮은 음식이었다. 초겨울 서리가 허옇게 내리고 시퍼렇던 감이 해질녘 노을마냥 예쁘게 물들어 갈 때쯤이면 감은 맛있고 배부른 훌륭한 간식거리이자 때론 한 끼 식사가 되기도 했다. 아주 잘 익어 투명하게 보일 정도의 감을 한 입 베어 물면 입 안에 도는 달달함과 감칠맛은 무엇과도 비교하기 쉽지 않은 맛이었고, 섬유질 또한 풍부해 제법 허기진 배를 달래주기도 했다.

문제는 동네 곳곳에서 쉽게 보이는 감이었지만, 대부분 딱히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는 공공 장소에 있거나, 혹은 주인이 뚜렷해도 마당 밖으로 삐죽하니 뻗어 나온 가지로 인해, 감을 노리는 손길 경쟁이 치열했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감은 제대로 익을 새 없이 조금씩 수확시기가 앞당겨졌고, 결국에는 전혀 익지 않은 땡감까지 털어대는 일까지 생겼다.

땡감은 감의 형태만 갖췄지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니었지만, 필요가 발명을 낳는다는 말처럼 사람들은 땡감 먹는 방법을 고안해 냈으니 바로 우려먹기. 푸르딩딩 해서 익으려면 한 참 남은 땡감을 대나무 작대기로 과감히 털어내더니 장독대 귀퉁이에 버려져있던 항아리에 담고는 막소주나 소금물에 담가든다. 그렇게 며칠 지나면 땡감의 떪은 맛은 사라지고 제법 달달한 감맛을 즐길 수 있게 된다. 

최근 제종길 안산시장은 한 지역주간지 기사에 대해 보도자료 형식의 성명문을 발표하며 “1면 머리기사 제목에 제종길이라는 이름을 넣어 ‘비리 의혹’이니 ‘배경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느니 하며 마타도어 식으로 악의적인 추측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이는 사실과 다른 오보며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현직 시장을 흠집 내기 위한 정치적 음해공작”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기사 내용과 상관없는 제종길이라는 이름을 제목에 크게 부각함으로써 기사를 본 시민들이 ‘제종길이 비리를 저질렀네’라고 오해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는 선거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는 중요한 범죄행위로 더 이상 그냥 지켜보지 않겠다.”고 법적대응을 예고했다. 

또한 “저는 언론의 공익적 기능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고, 언론의 자유는 어떤 상황에서도 최대한 보장돼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지만 이것은 언론이 사실에 근거해 올바르게 보도할 때의 이야기”라며 “언론은 공기(公器)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언론이 사적인 목적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밝힌다.”고 덧붙였다.

문제가 됐던 기사와 제 시장의 성명문을 비교해 읽으며 익지 않은 감이 떠올랐다. 제대로 준비가 안 된 감은 떫을 수밖에 없고, 그래도 그 감을 꼭 먹어야 한다면 소주나 소금처럼 최소한의 자재가 필요하며, 또 그만큼 떫음을 제거할만한 시간이라는 것도 필요하다. 어설픈 기사는 설익은 감만큼이나 떫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칭 후보로 나서고 있는 인물들의 면면도 떫기는 마찬가지다. 불명예스러운 비리로 중도 하차했던 사람도 시민들의 기억 속에서 채 잊혀지기도 전에 시장출마를 선언하더니 이미 자기가 다 된 것처럼 큰소리치고 다니고, 또 어떤 이는 20여년 동안 정치밖에서 야인으로 살다가 느닷없이 나도 시장 한 번 해봐야겠다고 나섰다. 몇 년 동안 시민단체를 이끌었던 경력으로 시장에 도전하는 사람도 설익기는 마찬가지다.

제발 숙성의 시간 좀 가졌으면 좋겠다.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입 안 전체에 퍼지는 달콤함을 느끼고 싶지, 이와 이 사이 그리고 혓바닥에 엉겨 붙는 떫음을 느끼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자중과 숙성, 언론과 정치에서 꼭 필요한 단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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