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경 편집국 제2사회부 국장

“엿을 먹으라”는 말이 욕이 된 이유는 1964년 12월 7일 시행된 전기 중학교 입시 때문이었다. 당시 “엿기름 대신 넣어서 엿을 만들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문제가 있었고 정답은 디아스타아제였지만, 보기 중 하나였던 무즙으로도 엿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항의가 일어났다. 결국 무즙을 답으로 썼다 낙방한 학생들이 법원에 제소하는 등 반발했지만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에 직접 무즙으로 엿을 만들어 관계 기관인 문교부, 교육청 등으로 찾아가 엿을 들이밀었다. 솥까지 들고 나와 시위를 하던 학생과 학부모들은 “엿 먹어라! 이게 무즙으로 만든 엿이다! 빨리 나와 엿 먹어라! 엿 먹어라! 엿 먹어라!” 

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사회문제가 됐고, 결국 김규원 당시 서울시교육감, 한상봉 문교부차관 등이 사표를 내야만 했다. 이후 6개월이 지나 무즙이라고 답을 썼던 학생 38명도 정원에 관계없이 합격시키는 것으로 문제가 수습됐다. 그렇게 엿 사건은 “엿 먹어라”는 신종 욕을 만들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엿은 아무런 죄가 없다. 사건 이전이나 이후에도 엿은 엿일 뿐이다. 엿을 욕하는 사람도 없고 엿에게 큰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엿 먹어라”는 말은 여전히 험악한 말로 사용 되고 있다. 엿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억울할까? 아무 잘못도 없이 욕의 대명사가 되었으니 말이다. 

요즘 우리사회에서 일어나는 정치인들의 인식도 엿 사건과 비슷한 것 같다. 우리국민들은 엿 만큼이나 잘못한 것이 없다. 꼼꼼히 따져보면, 국민들은 잘못한 것보다 잘한 것이 많고, 여전히 많은 정치인에게 도움을 주며 서로 소통하고 있다. 그러나 대형사고 등이 발생하면 불안은 국민 자체의 몫이 된다. 지금은 대한민국이 극복해야 할 시련의 시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세상이 아무리 정치인을 비난하고 무시해도 엿은 여전히 엿인 것처럼 정치인은 여전히 정치인이고, 국민은 정치인과는 달리 정직하고 거룩한 국민인 것이다. 모든 국민이 ‘엿’과 “엿 먹어라”를 구분할 줄 아는 것처럼, 언론과 세상의 비난 속에서도 국민들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대한민국은 은혜로운 곳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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