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동현 시인 고산정

지진을 지난 포항의 길고 긴 겨울이 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시치미를 뚝 떼고 형산강어구를 지나가고 있다. 

머잖아 진달래 향내가 강산을 물 드리겠지? 황망하게 보낸 겨울 이다보니 즐겨 읽던 명품 겨울시 한 두 편도 소개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어 컴퓨터를 열었다. 

‘지난밤 눈이 갠 후에 경치가 달라 졌구나/ 노 저어라 노 저어라/앞에는 넓고 맑은 바다,뒤에는 겹겹이 둘러 있는 흰산/지국총 지국총 어사와/신선의 세계인지 불교의 세계인지 인간 세상은 아니로다’ 

조선 중기의 문신인 윤선도가 지은 어부사시사라는 시조 가운데 겨울 노래 한수다. 눈이 온 뒤 달라진 바닷가의 아름다운 풍경을 노래한 명품시다. 윤선도는 1651년에 이 시조를 지었다. 그의 나이가 65세가 되던 해였다. 그는 벼슬을 그만두고 전라남도의 보길도라는 섬에 들어가 살던 중이었다. 윤선도가 살았던 조선 중기는 붕당정치가 한창이던 시절이다. 붕당이란 특정한 학문적. 정치적 입장을 가진 양반들이 모여서 만든 정치집단을 말한다. 이 중 윤선도는 남인 세력 출신으로 송시열을 우두머리로 삼은 서인 세력과 맞선 인물이다. 

1659년에 벌어진 제1차 예송논쟁에서 송시열과 서인 세력에게 패한 후 오랜 세월 유배 생활을 해온 인물이다. 예송 논쟁은 1659년 조선의 제17대 임금인 효종이 죽었을 때와 1674년 효종의 왕비였던 인선왕후가 죽었을 때 효종의 계모인 자의대비가 상복을 몇 년간 입어야 하는가를 두고 남인과 서인 사이에 벌어진 논쟁 이였다. 

한편 조선 1689년 김수항이란 인물은 전라남도의 진도에서 어느 눈 내리는 날에 ‘눈 오는 밤 홀로 앉아’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허술한 집에 싸늘한 바람이 불어오고/빈 뜰엔 흰 눈이 쌓이네/근심스런 내 마음과 저 등불은/이 밤 함께 재가 되었네’ 김수항은 송시열을 따르던 서인이었다. 제1차 예송논쟁 때는 앞장서서 윤선도와 남인을 관직에서 물러나게 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1689년에 숙종이 후궁인 장옥정이 낳은 아들을 원자로 삼는 것을 송시열과 함께 끝까지 반대하다가 남인의 공격을 받아 관직을 잃고 유배를 당한 후 유배지에서 사약을 받고 죽음을 맞이한 인물이다. 

‘눈 오는 밤 홀로 앉아’라는 시는 그 일로 유배를 당해 진도에 있을 때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서인은 어떤 사람들이고 남인은 또 어떤 사람들일까? 조선은 선조때 사림파가 조정에 진출하면서 조정의 인사권을 행사하는 이조전랑이라는 관직을 두고 동인과 서인으로 갈라졌다. 동인은 주로 이황과 조식의 제자들로 이루어진 영남학파 출신 이였고 서인은 주로 이이와 성혼의 제자들로 이루어진 기호학파 출신들이였다. 그 뒤 동인은 서인의 우두머리였던 정철에 대한 처벌을 놓고 강한 처벌을 원하는 북인과 그렇지 않은 남인으로 갈라서게 된다 이중에 서인은 남인에 대한 처벌을 놓고 강한 처벌을 원한 노론과 그렇지 않은 소론으로 세력이 갈라진다. 이렇게 시작된 당파들이 조선 중기에서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조정에서 서로 권력 다툼을 벌리며 붕당정치는 극에 이르게 된다. 앞서 눈에 관한 두 시는 윤선도와 김수항이 생사를 넘나드는 치열한 붕당정치 속에서 남긴 것이다.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 조선의 뛰어난 두 문장가가 만든 시 두 편이 그 의미를 더욱 새롭게 한다. 환경이 절박할수록 더욱 격조 높은 작품들이 만들어지는 세태는 예나 지금이나 불문율인가 보다. 뷔페한 대통령의 말로를 보면서 길고 암울했던 이 삼동을 보내면서 희망찬 춘분을 노래하고 싶다는 마음은 나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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