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광 기

한 밤중의 고층빌딩에 불빛 하나 있다.
북적대던 인파 흔적도 없이 사라진 시커먼 몸체에서 
촛불 같은 불빛 하나 반짝거리고 있다.
요즘의 어둠은 어둠 같지 않게 건물의 윤곽을 밝힌다.
검은빛이 광을 내며 어둠이 어둠을 지킨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더 새까만 어둠이다.
원형을 잘 보존해놓은 공룡의 뼈 같은 빌딩, 
마치 한낮의 유언이라도 흐르듯 
캄캄한 냉기가 감돌고 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이 떠난 곳은 더욱 스산하다. 
언제 사람들이 북적거렸을까 싶은 곳에서 
고양이 눈빛처럼 깜빡이는 불빛 하나 비추고 있다. 
빌딩의 혈관을 적혈구처럼 흐르던 사람들, 
그들이 남기고 갔음직한 사람들 몇은 보이지 않는다. 
식은 핏물 같은 서늘한 어둠에 불빛 하나 켜 놓고 
시커먼 그림자를 감춘 채 
빌딩 구석에서 가르릉 가르릉 소리를 내고 있다.

*김광기 : 1959년 충남 부여 출생. 
1995년 시집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를 내고 작품 활동 시작. 
시집 ‘호두껍질’, ‘데칼코마니’, ‘시계 이빨’ 등과 시론집 ‘존재와 시간의 메타포’ 등. 1998년 수원예술대상 및 2011년 한국시학상 수상.
                        
                                                                                        <수원시인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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