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남부보훈지청장 정병천

북한산 자락 아래에 위치한 서울 수유리에는 국립4·19묘지가 조성돼 있다. 4·19묘지는 1995년 4·19혁명 35주년에 국립묘지로 승격됐고, 자유·민주·정의를 꽃피운 민주성지로 불리고 있다. 현재 이곳에는 4백사십오 분의 4·19혁명 민주영령들이 안장되어 있다. 60년전 4·19혁명 당시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불의에 항거하고 정의를 위해 헌신한 이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사회로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올해는 코로나19 감염병 확산 예방을 위해 유영봉안소는 문을 닫아 참배할 수 없었지만 4·19묘지는 개방되어 있어 참배가 가능했다. 특히, 4월이 되자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탄탄한 초석을 다져 놓은 4·19묘지에 많은 참배객들로 붐빈다. 붐비는 이유가 뭘까. 모두 4·19정신을 계승하겠다는 사람들이다. 60년 전 4월 19일 어떤 일이 있었을까.

1960년 봄 자유당 정권은 집권 연장에만 집착해 부정선거를 자행했다. 이에 저항하여 2월 28일 가장 먼저 민주화운동에 불씨를 지핀 곳은 대구였다. 이어 3월 8일 충청권 최초의 학생운동으로 대전에서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 후 3월 15일 마산에서 대규모 규탄시위가 이어졌다.

그리고 4월 19일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서 시위가 들불처럼 번져갔다. 학생, 교수와 시민, 보통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시위에 함께 했다. 권력은 10만 여명에 이르는 시위 국민을 무력으로 진압했다. 이날 서울에서만 1백 여명이 목숨을 잃었고 수많은 사람이 부상을 입고 거리에 쓰러졌다. 그러나 4월 26일 결국 쓰러진 것은 국민이 아니라 정권이었다. 직접 민주주의를 국민들에 의해 되찾은 것이다. 이처럼 국민의 힘으로 이뤄낸 4·19혁명이 갖는 역사적 의의를 되새겨 보고 후대에 전해야 하지 않을까.

첫째, 4·19혁명은 학생과 시민, 보통사람이 중심이 되어 불의의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아시아 최초의 민주혁명이었다.

둘째, 4·19혁명은 헌법 제1조제2항에서 규정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처음으로 실증됐다.

셋째, 4·19혁명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에 탄탄한 초석을 놓았다고 볼 수 있다. 민주주의 발전에 싹을 틔운 4·19라는 열매는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분연히 떨쳐 일어났다. 신군부의 권력에 맞선 1980년 5·18민주화운동, 대통령직선제를 쟁취한 1987년 6월 항쟁, 2017년 촛불 시민혁명으로 이어져 온 것도 4·19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처럼 민주주의는 거져 얻어지지 않고 오랜 세월에 걸친 장렬한 투쟁과 희생으로 얻어진다는 사실이다. 

오는 19일은 4·19혁명이 일어난 지 60주년을 맞는다. 4·19혁명은 민주적 시위를 통해 민의가 반영된 정치체제를 수립했다는 점에서 세계사적으로 민주주의가 승리한 선진 사례이다. 광장의 촛불에서 보았듯이 민주주의는 그 안에 수많은 사람의 피와 땀과 눈물과 열정이 녹아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자유·민주·정의가 살아 숨쉬고 있는 4·19정신을 기억하고 계승 발전시켜 국민통합의 길로 나가는 것이 진정 우리의 사명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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