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때 매일 퇴계로로 출근했는데….” 1990년 영화 ‘장군의 아들’로 데뷔한 김승우(47)는 뉴시스 주소지인 서울 중구 퇴계로를 보더니 잠시 추억에 빠져들었다.

25년 전 배우의 꿈을 안고 영화사로 연기수업을 받으러 다니던 그때 그 시절이 떠올랐다. 김승우는 ‘장군의 아들’ 오디션에 합격한 날짜를 정확히 기억하며 “내 인생의 중요한 날”이라며 감회에 젖었다.

“1989년 8월18일, 대학교 2학년 때다. 오디션에 붙어 6개월간 영화사 건물 13층으로 매일 출근했다. 아직도 명동에서 충무로로 이어지는 지하 차로가 있나? 거기 지나면 어두웠다 빛이 확 들어왔는데…. 나 역시도 청운의 꿈을 안고 그곳을 다녔다.”

그때 품었던 꿈은 다 이뤘을까. “아유, 그 이상이지. 난 운 좋은 놈”이라며 웃었다. “아직도 연기하고 있음에 감사한다. 그때는 막연했다. 앞이 안보여서, 기회가 안 와서, 나보다 먼저 치고나가는 친구들이 보여서 많이 울었다. 그만 두기에는 새로 경험한 이 일이 너무 재미있는데 우리 직업이 하고 싶다고, 손 든다고 되는 게 아니잖나. 아직도 선택받는 게 기쁘다. 열심히 노력해준 나를 칭찬해주고 싶다.”

그동안 ‘배우’로 잘 살아온 김승우다. 이런 그가 요즘 다른 꿈을 꾸고 있다. 바로 제작과 연출이다. “그동안 배우로 참여해 많은 이야기를 해왔지만 아직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야구선수가 체력이 다 돼 은퇴하고 감독을 하는 개념은 아니다. 배우는 계속 할 생각이다. 다만 내가 꼭 참여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배우로 참여할 여건이 안 되면 제작이나 연출로 참여하고 싶다.”

지난 7일 개봉한 영화 ‘잡아야 산다’로 김승우는 ‘제작’을 간접 경험했다. 이 작품은 김승우의 남동생이 대표로 있는 더 퀸 D&M이 제작했다. 김승우·김남주 부부를 비롯해 김정태, 오만석 등 연기자뿐 아니라 작가, 감독 등이 소속된 아티스트 전문 매니지먼트사 겸 제작사를 지향한다.

“내가 본격적으로 제작에 나선 것은 아니나 제작자 마인드로 참여한 것은 맞다. 근데 배우를 하면서 제작까지 하는 것은 녹록지 않더라. 배 놔라 감 놔라 하려면 깊이 관여하면 안 되겠더라. 거리가 필요한 것 같다. (정)우성이도 힘들지 않았을까 싶다.” 공교롭게 ‘잡아야 산다’는 정우성이 주연·제작한 영화 ‘나를잊지말아요’와 같은 날 개봉했다.

중년의 배우는 제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신이 나 보였다. 정말 즐겁다는 듯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놨다. 원래 글쓰기도 좋아했다는 그는 그동안 쓴 시나리오가 10편이 넘는다고 귀띔했다.

“어떤 이야기를 꾸미고 만들어내는 게 재미있다. 그동안 어떤 역할이 주어지면 늘 캐릭터 전사를 써서 감독에게 보여줬다. 캐릭터 잡아갈 때 그렇게 활자화시키는 게 더 좋았다.”

무슨 이야기를 그리 하고 싶을까. “진한 남자들의 이야기, 여자들의 깊은 이야기, 깊고 진한 사랑이야기를 하고 싶다. 난 비주얼적으로 현란한 이야기는 선호하지 않는다. 그래서 SF나 판타지물은 거의 안 본다. ‘어벤저스’도 안 봤다. 오히려 ‘겨울왕국’은 애들 보여주러 갔다가 내가 더 좋아하게 돼 서너번 봤다.”

‘인간극장’같은 다큐멘터리도 언급했다. “기막히게 슬프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많잖나. 내가 모르는 이야기가 참 많구나. 저런 게 실제로 가능한 이야기구나.”

“여자들의 이중적인 모습도 재밌더라. 여자들끼리 있을 때와 남자들끼리 있는 모습은 다르잖나.”

그동안 쓴 시나리오를 부인 김남주(45)에게 보여준 적이 있을까? “늘 보여준다”고 답했다.

“어떨 때는 이게 괜찮은 거냐고 반문하고, 어떨 때는 아이디어가 좋다고 해준다. 냉정한 모니터를 해준다.”

25년 전 배우의 꿈을 품었던 그 청년은 이제 중년의 배우가 됐다. 중년의 배우가 다시 꾸는 꿈, 제작 혹은 연출, 몇 년 뒤 어떤 형태로 발전해 있을지 궁금해진다.

/뉴시스

키워드

#N
저작권자 © 전국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