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규 "'오로라' 하차 황당·섭섭…인생의 약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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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박영규(60)는 젊은 시절 '한국의 클라크 게이블'로 불렸다. 그러나 그는 클라크 게이블처럼 신사 같은 이미지에도 틀에 얽매이지 않는 넓은 연기 보폭을 보였다.

그간 시트콤 '순풍 산부인과'의 코믹한 '미달이 아빠'부터 사극 '해신'의 카리스마 있는 거상, 드라마 '백년의 유산' 속 '꽃 중년'까지 역할마다 '내 것'으로 흡수하는 내공을 보여줬다.

이러한 '연기 9단' 박영규에게 최근 속상한 사건이 하나 있었다. 지난 7월 MBC 일일극 '오로라 공주'에서 갑작스럽게 하차한 것. 손창민, 오대규가 제작진으로부터 일방적인 하차 통보를 받은 데 이어 주인공 오로라의 큰 오빠로 출연한 박영규도 극 중 미국행을 택하며 브라운관에서 사라졌다.

최근 을지로에서 인터뷰한 박영규는 당시 심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1년 전부터 제의를 받아 수차례 고사한 끝에 결정한 작품이었어요. 그럼에도 상대를 배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처사에 처음엔 섭섭하고 황당했죠. 시청자에게 감동 주는 드라마를 만든다는 사람들의 자세에 실망도 했고요. 지금껏 그런 마음으로 연기한 배우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죠. 제작진이 출연진과 찍은 계약서도 의미가 없더군요."

그는 "배우는 드라마를 준비하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고 다른 작품을 거절하니 기회비용도 생긴다"며 "나름의 철학을 갖고 한해 농사를 지으려 했는데 가을걷이가 박살 났다. 차후 후배들에게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이내 마음을 정리했다. 상대를 원망하기 전에 그 작품을 결정한 것도 자신이었다. '내 탓'이라고 여겼고 인생에 약이 됐다고 결론 내리자 '새옹지마'처럼 좋은 일이 찾아왔다.

그는 내년 1월 4일 첫 방송 될 KBS 1TV 대하사극 '정도전'(가제)에서 정도전과 대립각을 세우는 '정치 9단' 이인임 역에 캐스팅됐다. 사극은 2004년 KBS 2TV '해신' 이후 10년 만이다.

"만약 '오로라 공주'를 계속 했다면 '정도전'을 못했을 겁니다. '해신' 촬영 때 완도까지 다니며 '절대 사극은 안 한다'고 했는데 '정도전' 대본을 보니 역할이 운명적으로 다가왔어요. 이인임은 이 드라마가 전개되는데 중요한 역이거든요. 어제 대본 첫 리딩을 했는데 강병택 PD가 '형님, 이제 마음이 놓이네요'라더군요."

'정도전'에는 조재현(정도전 역), 유동근(이성계), 임동진(최영) 등 걸출한 배우들이 대거 캐스팅됐다. 박영규는 모처럼 연기를 제대로 한번 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며 '껄껄' 웃었다. 캐릭터가 무척 마음에 들어 연기라는 게 어떤 것인지 보여줄 기회인 것 같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간 코미디 연기를 다수 해 젊은 층에 재미있는 배우란 이미지가 굳어졌는데 그 이미지를 반전시킬 역할인 것. 또 지난 6월 시청률 30%를 돌파하며 종영한 '백년의 유산'에서 60세의 나이에 22세 연하 배우 선우선과 로맨스를 펼친 만큼 단박에 캐릭터 변신도 가능했다. 그는 필요한 시점에 이런 작품이 들어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머리가 좋고 정치적인 이인임은 정도전과 대립하며 극 중 갈등을 유발하기 때문에 주요 인물이 모두 거쳐 갈 정도로 임팩트 있는 역할이에요. 허술한 악역이 아닌 만큼 어깨가 무거워졌죠."

그는 '오로라 공주'의 하차가 '정도전'으로 이어지는 걸 보면서 "배우가 작품이 내 것이 아닐 때는 타이밍을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며 "그렇지 않으면 배우의 매력은 서서히 잠식된다"고 강조했다.

그로 인해 나이를 먹으면서 조바심 내고 쉽게 판단하지 않으려면 자신의 삶을 지탱해줄 뭔가가 필요하다고 여겼다. 용기를 내 배우 인생 처음으로 외식 사업에 도전하기로 했다.

그는 고향 친구의 도움으로 오는 10일 마포구 상수동 극동방송 인근에 750평 규모의 요리주점 '코다차야'를 연다.

"외식 사업은 처음이에요. 배우로서 조급해하지 않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더 좋은 작품을 만나고 싶어서 하는 일입니다. 사업은 제 목표들을 위한 여러 준비 중 하나인 셈이죠."

그는 연기와 사업을 병행하면서 자본이 축적되면 영화 제작을 해보고 싶다는 꿈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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