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는 ‘대가 없이 나보다 남을 위해서 하는 봉사’

봉화문화원 이춘연 원장
봉화문화원 이춘연 원장

 

(봉화=류효환 기자) 이춘연(71) 봉화문화원 원장은 봉사란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을 인용해서 그간의 봉사활동에 대해서 스케치를 하였다.

“봉사는 나보다 남을 위해 대가 없이 일하는 봉사가 참봉사라며  “평소에 심적으로 우러나 사회에 무엇인가 환원을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행동으로 옮겨졌을 때 진정한 봉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봉화군 법전면 어지리가 고향인 이춘연 원장은 1976년 봉화군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해 법전면장, 물야면장을 거쳐 청량산 사업소장을 끝으로 2011년도 36년의 공직생활을 마무리했다.

이 원장은 “그다지 배운 것도 없고 인맥도 많지 않은 저를 이 자리까지 오게 해준 정부에 큰 혜택을 입었다”며 “나라를 위해서 뭔가 내가 좀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지금 이 자리까지 온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춘연 원장은 지금까지 살면서 아주 보람되게 했다고 생각하는 게 KOICA 해외봉사단에 소속돼 캄보디아에 가서 봉사활동을 펼친 시간이 기억에 남는다며 손꼽았다.

그는 “퇴직한 다음 해인 2012년 7월 KOICA 해외봉사단에 선발돼 2년 동안 캄보디아에서 봉사한한 시간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면서 “봉사활동을 마치고 돌아올 때 몸무게 10kg 빠질 정도로 힘은 들었지만, 현지에서 면사무소 겸 보건소를 지어 줬을 때 현지인들이 좋아하는 모습에 힘든 시간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고 말했다.

한편 “봉화군 이래 KOICA 해외봉사단 1호로 등록했고 내가 설계하고 공사까지 마친 사진을 지금도 보고 있으면 세월이 흘러도, 아직 기억이 생생하게 날 정도로 내인생에 보람된 생활을 했다”고 덧붙였다.

또한 “캄보디아 봉사가 끝난 다음에는 노인복지관에서 식사 배달, 식단관리 등 봉사활동을 2천 시간이나 했고 이후 KOICA 해외봉사단으로 다시 베트남에 가서 새마을운동 분야로 6개월 봉사활동을 하고 왔다”고 전했다.

현재는 봉화 문화원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다가오는 8월 말이면 임기가 끝나지만, 초심을 잃지 않고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변함없이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문화원에 대해 일반주민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좀 있는 것 같다”며 “문화원은 옛날 조선 시대 때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라 해방되고 서양에서부터 들어와서 농사일로 인해 문화를 접할 수 없었던 주민들에게 문화를 접할 기회를 주고자 하는 측면에서 지금까지 쭉 이어져 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문화원은 옛 문화와 현제의 문화, 앞으로 미래 문화까지 합해서 교육이라든가 또 여러 가지 문화의 종류에 대해 예산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봉화문화원에서 교육을 받는 학생 수가 현재 일주일에 한 350명 정도 되지만 코로나19가 발발되기 전에는 550명이었다”면서 “22개 과목에 교육생들이 대단한 열정을 가지고 색소폰, 기타 등등으로 밤낮으로 연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취임한 후 3년 6개월 동안 문화원장으로서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다”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교육생들이 교육을 받을 장소가 부족해 애로사항이 많다”고도 토로했다.

그러면서 “남은 임기 동안 군청과 잘 조율해 교육생들이 편안하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될 수 있도록 예산 확보에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도 밝혔다.

또한 이춘연 원장은 향토사 연구에 대해 “지금 향토사 연구원들과 심혈을 기울여 조사하고 있다”며 “향토의 모든 분야, 과거에 알려지지 않고 공식화되지 않은 사실을 두고 조사를 통해 한 90% 진행률을 보이며 오는 상반기 전후로 책으로 출판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관네 10개읍면 “구석구석에 있는 바위에 글씨가 새겨져 있는 것이 많이 있다”며 “글씨를 언제 누가 왜 썼으며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조사가 이뤄지고 있으며 이것 또한 향후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출판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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