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태 작가·시인
허경태 작가·시인

내가 P중학교 2학년 때다. 당시 8반 담임이셨던 K선생님께서는 내가 국어 시간에 책을 잘 읽는다고 변론반에서 활동하기를 권했다. 거기에다 반 서기까지 맡기셨다. 서기가 할 일은 매일 학급일지를 작성해 수업이 끝난 후 선생님께 검사를 맡는 것이었다.

매주 목요일 특별활동시간이 되면 변론반에 모여 K선생님의 지도 아래 선배들과 웅변연습을 같이 했다. 그때는 매년 5월이 되면 교내웅변대회가 열렸다. 전교생이 운동장에 앉아 각반 대표로 출전한 연사들의 웅변을 들으며 박수를 보내며 응원을 했다.

이날 행사에서 최우수상에 뽑힌 학생은 학교를 대표하여 포항시웅변대회에 참가를 하고 학교 선생님들이 심사위원을 맡는 것이 관례였다.

변론반 담당이 K선생님이셨기에 대회를 앞둔 국어 수업시간이면 어김없이 학생들 앞에서 웅변연습을 시키셨다. 그 덕분에 교내웅변대회에서 우수상을 여러 번 수상하면서 학교대표로 포항시웅변대회에 출전, 더러 입상을 하기도 했다. 학교 밖 행사에서 드로피와 상장, 상품을 받으면 일단 교무실에 가져갔다가 월요일 아침 조회시간에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시상식이 거행되었다.

당시에는 웅변원고를 써줄 사람이 없어서 동화책에 나오는 ‘토끼와 늑대’를 남한과 북한에 빗대어 직접 원고를 작성해 교내웅변대회에 나갔다. 지금도 기억나는 원고 제목은 ‘반공 맥주’, ‘남의 이름을 도둑질한 김성주’ 등이다.

내가 伯山 박영근 선생님을 처음 만난 곳은 지금은 없어졌지만, 당시 서경도서관에 3층에 있는 포항문화원 강당이었다. 청소년 반공 웅변대회를 마치고 시상식에서 포항시웅변협회장상을 받을 때였다.

이후 사십여 년의 세월이 지난 후 필자가 D신문사 편집국장으로 근무할 때 다시 만나게 되었다.

伯山 선생님은 오랜 기자 생활을 끝내고 한동대학교 특임교수로 강의하면서 지역일간지에 논설위원으로 칼럼(伯山時論)을 연재하시고 계셨다. 伯山 선생님을 뵙고 과거의 얘기를 드렸더니 어릴 때 제 모습을 어렴풋이 기억해 내시고는 살갑게 대해주셨다.

D신문사 편집국장으로 재직할 때는 매주 1,2편씩 칼럼 원고를 보내주셨고, 유강에 소재하는 한우1번지에서 쇠고기도 가끔씩 사주시면서 언론사 선배로서 기자 생활의 경험담과 함께 필요한 조언도 많이 해주셨다. 당신이 쓰신 칼럼이 신문에 게재되는 날에는 하루 종일 수백명의 고정독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낼 정도로 글에 대한 애착과 열정이 가득하셨다.

2015년에 필자가 쓴 인문고전서 <고전오락-고전에서 얻는 다섯 가지 즐거움>과 2016년에 출간한 산문집 <세상 사는 이치>를 드렸더니, 책을 선물한 지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에 갑자기 전화를 하셨다.

자다가 깨서 얼떨결에 전화를 받으니 선생님께서는 필자가 쓴 산문집을 방금 다 읽고 감동을 받아 전화하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지금부터 자네와 나는 친구로 지내자”면서 산문도 이렇게 좋은 글인지 처음 알았다며 흥분을 감추시지 않았다. 그동안 칼럼이나 논단, 시론만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했다면서 글에 대한 편견을 버리기로 했다고도 했다. 이후 선생님과는 글로써 더욱 가까워져 친구처럼 지내게 되었다.

D신문사를 그만두고 K신문사 편집국장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도 필자가 재직하는 신문사라는 이유만으로 D신무사에 기고하던 칼럼을 끊고 원고를 꾸준히 보내주셨다.

그러다가 원고를 보내시는 횟수가 점점 줄더니 원고가 끊겼다. 연유를 알아보니 척추 수술 후 건강히 극도로 나빠지셨기 때문에 의자에 오래 앉아 있기가 힘들다고 하셨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필자가 신문사 편집국장으로 보낸 세월이 10년이 되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최근 몇 년 동안 伯山 선생님께 안부 인사도 올리지 못하고 찾아뵙지도 못했다. 이른 새벽 문득 선생님 생각이 나서 잠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에 앉아 지난 일들을 생각하니 죄송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인생은 사람의 인연으로 이어진다. 까까머리 시절 처음 만나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내가 지켜본 伯山 선생님은 매사에 거침이 없었고, 그러면서도 먼저 당신의 곁을 내주는 여유로운 마음을 지니고 계셨다. 내가 선생님과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도 열린 마음으로 편하게 대해주셨기 때문이다.

최근 건강 때문에 힘이 드신다는 소식을 선배에게 들었다. 걱정이 많이 된다. 늘 단정하게 머리를 빗어 올리시고 나비넥타이를 메고 웃으시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선생님께서 빨리 건강을 되찾아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얻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할 뿐이다.

“선생님의 건강이 빨리 회복되시길 늘 기도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선생님.”

 

허경태 (작가·시인·칼럼니스트)

경북 포항 출생으로, 시집 ‘이조여인’(89년)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포항시 공무원으로 20여 년간 재직했다. 이후 지역일간신문 객원 논설위원, 2013년부터는 최근까지 지역일간지 편집국장으로 일하다가 지금은 저술에 전념하고 있다.

2003년부터는 목천고전연구실에서 사서삼경과 한시를 공부하면서, 사문학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07년 네이버 블로그 <愛竹軒山房>을 통해 청소년과 문학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주요저서로는 시집 ‘이조여인’, ‘시인은 죽어서 바다가 된다’(2인 공저), 논술서 ‘기초글쓰기’, ‘갈래글쓰기’, ‘기초논술’, ‘실전논술’, ‘대입주요논제20’, 산문집 ‘세상사는 이치’, ‘흰 고독의 순간이 찾아올 때’, ‘행복한 이기주의자’, 인문고전서 ‘고전오락-고전에서 얻는 다섯 가지 즐거움’, ‘정신문화의 원류, 서원을 찾아서 1·2’, 칼럼집 ‘쉬지않고 표현해야 사랑이다’, ‘가진 자가 먼저 약자와 손잡는 사회’, 서평집 ‘행복한 삶을 위한 讀한 선물’, 서평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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