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태  작가
허경태  작가

愛竹軒 칼럼

나는 개인적으로 인생을 전·중·후반기로 나눈다. 전반기는 40세까지, 중반기는 70세까지, 나머지 시간은 후반기로 본다. 백세시대에 맞게 우리의 인생 설계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인생의 중반기에 살고 있는 나는 지금이 내 인생의 봄날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식들은 성인이 되었고, 치열하게 경쟁하며 살던 삶의 현장에서도 잠시 벗어난 이제는 조금씩 쉬면서 살아갈 수 있는 정신적 여유가 생겼다.

사람에 따라 상황은 달라질 수 있지만, 그동안 살아왔던 삶을 되돌아보고,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재충전의 시간을 얻은 것이다. 재충전 후에는 새롭게 나를 넘어서는 새로운 기회가 기다리고 있다.

인생을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진다. 하지만 기회는 그냥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주어진 시간과 공간 속에서 준비하며 기다린 자만 가질 수 있는 선물인 것이다. 사람은 사람을 통해서 기회를 얻는다. 그 기회는 결국 타인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느냐에 있다.

현재 나는 시인, 작가, 저술가, 칼럼니스트, 인문학 강사라는 직업에다 한 가정의 가장이다. 얼마 전까지는 지역 일간신문 주필·편집국장 겸 편집상무라는 직함도 가졌다. 작가라는 직업으로 나에 의해 구성된 이야기는 나만이 가지는 세계의 진실성을 방영할 뿐이다. 그것은 타자의 세계를 재단하는 기준이 될 수 없고, 세계 전체를 기술하는 보편적 진리가 될 수도 없다.

말과 글은 오해의 소지가 많다. 오해를 줄이기 위해 나름대로 노하우를 사용한다. 사람마다 갖고 있는 노하우는 천차만별일 테지만, 이를 단순화시키면 언어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은 두 가지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것은 언어의 양을 늘리는 것과 줄이는 쪽이다.

말과 글 이것이 정교하게 손질되었을 때는 가치 있는 결과물로 나타난다. 즉, 언어의 양적 증가가 끝에 닿았을 때는 책이 되고, 양적 감소가 끝에 닿았을 때는 시가 되는 것이다.

책과 시는 상반된 방향으로 나가지만 타인의 내면에 정교하게 다가갈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신비하고 독특한 도구이자 매개물이라고 할 수 있다.

언어의 불완전성, 언어의 태생적 한계. 어쩌면 이러한 부족함이 자유와 즐거움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책과 시를 읽는 이유, 그것이 나를 자유롭게 하고 즐겁게 한다. 이는 저자의 생각이 오롯이 나에게 주입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것에 개입하고 재해석하고 의미를 함께 부여하기 때문일 것이다.

독서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선 체험이다. 우리가 책에서 무언가를 배운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다. 우리가 앞서 체험한 경험이 책을 통해 정리되고 이해될 뿐이다. 일례로 <어린왕자>는 단순히 아이들을 위한 동화가 아니라 ‘사랑과 연애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해 앞에는 언제나 체험이 있다. 그 반대일 수는 없다.

다시 내 이야기로 돌아가면, 만 20세까지 나는 가난한 농사꾼 아들이었다. 학창시절에는 책을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에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또래들과 같이 고교진학을 하지 못했다. 대신 공사장 허드렛일과 생명보험회사 사환으로 돈벌이를 해서 1년 후 고교생이 되었다. 졸업 후에는 지방행정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야간대학을 마치고 공직생활을 만 40세까지 하다가 사무관으로 명예퇴직을 했다.

불혹의 나이가 되기까지 20대는 햇병아리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틈틈이 시를 쓰는 시인으로 활동하면서 시집 <이조여인>, <시인은 죽어서 바다가 된다>를 출간했다. 30대에는 중견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결혼도 하고 두 자식을 낳아 가장이 되었다.

인생 중반기 초입인 만 40세에 공무원을 사직하고 논술학원을 운영하면서 동양고전(천자문, 천고담, 사서삼경 등)을 공부했다. 학원 운영을 접은 뒤에는 고대학원, 대성N학원, 서울 노량진학원 대표 강사로 일하면서 지역신문에 사설과 칼럼을 꾸준히 썼다. 50대, 부모님이 모두 타계하신 후에는 언론사에 몸을 담았다. 시사코리아저널 선임기자, 경상타임즈, 대경일보, 경상매일신문 편집국장으로 일하면서 건강유지를 위해 주말마다 국내외 등산을 8년여 간 다니면서 산꾼이 다 되었다.

학원 강사 시절에는 도서관에서 매일 책 읽고 글을 썼다. 그 결실로 2015년 <고전오락-고전에서 얻는 다섯 가지 즐거움>을 출간해 한 달 만에 주간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이어 2016년 11월 <세상 사는 이치>, 2017년 <흰 고독의 순간이 찾아올 때>, 2018년 <쉬지 않고 표현해야 사랑이다>, <정신문화의 원류, 서원을 찾아서1·2>, 2020년 <행복한 이기주의자>, 2021년 <가진 자가 먼저 약자와 손잡는 사회>, <행복한 삶을 위한 讀한 선물>을 출간했다. 산문집과 칼럼집, 서평집, 인문고전서 등 매년 책 1권씩 출간하며 작가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인생 중반, 10년을 넘게 일했던 지역 일간지 편집국장을 쿨하게 사직했다. 일은 많고, 대가는 적었고, 책임은 무거웠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신이 황폐해지는 것 같았다. 이제 그만두고 쉴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 최고의 봄날은 지금인데 놀 시간이 많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기에만 적혀 숨도 못 쉬고 있는 생각들.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실천하려면 건강과 시간, 금전, 열정이 남아 있어야 한다. 모처럼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라는 선물을 받았으면 제대로 놀아야 한다. 그동안 피폐해진 몸과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 3개월 동안 카미노 코스를 종주하려고 한다.

먼저, 프랑스 르퓌 순례길 800Km(프랑스 르퓌 앙플레 출발-피레네 산맥 초입 생장까지), 두 번째, 스페인 북쪽 순례길 800Km(프랑스 생장에서 스페인 이룬과 빌바오를 거쳐 산티아고에 이르는 길), 세 번째, 포르투갈 순례길 400Km(산티아고에서 포르투갈 포르투를 거쳐 리스본까지 이어지는 길)를 걸을 계획이다.

종주가 끝나면 일상적이고 소소한 일에도 관심을 갖고 예술모임에 참여할 생각도 가지고 있다. 그동안 보잘 것 없고, 미미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한 눈길도 주며 살아가고 싶다.

그리고 아직도 실현하지 못하고 있는 연4회(분기별 1회) 해외여행(일본, 대마도,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 등)의 꿈을 이루는 것이다.

이밖에도 책 50권 출간(다양한 분야에서 인생에서 남는 기록과 여행에서 남긴 사진)을 하고, 평일에는 부학산, 토요일은 전국 국내 명산을 쉬지 않고 오르는 것이다.

중년의 휴식을 만끽하고 재충전을 통해 다시 일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노동의 신성함을 음미하면서 인생의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즐길 것이다.

끝으로 매주 3권 이상 독서(다양한 분야)와 인문학(대중 속 인문학, 고전인문학), 북 코칭 강의를 하면서 빠뜨리지 않고 일기 쓰기를 지속하는 것, 가까운 지인과의 만남(스승, 멘토), 일상적이고 소소한 대인관계, 친목(차 한 잔, 식사, 잦은 벙개)을 통해 더불어 사는 삶의 맛을 느끼며 사는 것이다.

70세 이후에는 자서전 집필, 살아온 삶 정리, 부부간 행복한 시간 보내기로 인생 후반기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아직도 눈부시게 아름답다.

오월의 따스한 햇살과 바람을 맞으며 대지를 수놓은 꽃들의 향연, 그러다 어느 날, 꽃이 핀 그 자리에서 튼실한 열매가 맺을 것이다.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한 번 뿐인 삶, 삶은 자신이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물론 운칠기삼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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