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태 작가, 시인
허경태 작가, 시인

愛竹軒 칼럼

고교 시절부터 사진을 좋아하다가 성인이 되고 나서 본격적인 전업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친구한테서 지난주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아보니 친구 제자의 사진작품을 보고 시인의 눈으로 본 소감을 글로 적어 달라는 것이었다. 처음 부탁하는 일이라 거절하기도 그렇고 해서 마지 못해 승낙을 했다.

그러자 친구는 그날 사진을 가져와서 전해주고 갔다. 이후 바쁜 일과로 작품을 보지도 못한 채 며칠을 흘려보냈다.

그런 차에 사진전 시간이 촉박해서 팸플릿을 빨리 만들어야 한다며 소감을 다 썼는지 전화로 물어왔다. 아직 덜 썼다는 말을 하고서 주말까지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약속한 주말 아침이 되자 부랴부랴 느낀 대로 글을 써서 친구의 메일로 보냈다.

제목은 ‘세상의 모든 존재 사이를 연결하는 시간의 미학’, 부제로 이명숙 사진작가의 작품전에 부쳐‘로 정했다. 소감은 평론가의 시각이 아닌 순수한 시인의 눈으로 보고 느낀 대로 쓴 글이었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결코 혼자가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도움과 희생으로 지금을 살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가끔은 위로받고 싶은 일이 있다. 그렇게 위로 받고 싶은 날,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서 가슴 안의 것들을 시원하게 털어놓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고 스스로 위무하며 마음을 삭이는 경우가 많다. 이명숙 작가의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이해가 아닌 마음의 공감을 통해 위로를 받는다는 느낌이 든다. 그의 사진을 처음 보았을 때는 과거와 현재, 생성과 소멸, 사라짐과 태어남, 상처와 치유, 잠금과 열림, 아쉬움과 만족감, 아름다움과 추함, 인공과 자연, 안과 밖, 쓸쓸함과 화려함, 지난 시간과 지금의 시간, 생명의 환희와 죽음의 처연함, 밝음과 어두움, 희망과 절망, 무거움과 가벼움, 이승과 저승, 보임과 보이지 않음, 칼라와 흑백, 질서와 혼돈 등을 떠 올렸지만 두어 번 반복해서 보는 사이에 한 작품 한 작품이 진하게 가슴에 스며들었다.

그 연유는 무엇일까  가만히 생각하니 상호 이질적으로 대비되는 대상 사이를 연결하는 ‘시간’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가고 세월은 강물처럼 흘러간다.

셰익스피어는 “나이가 든다는 것은 젊음과 지혜를 바꾸는 것”이라고 했고, 현대물리학의 해명으로는 “과거와 미래라는 것은 인간의 의식 안에 존재할 뿐, 우주 어디에도 없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현재뿐.”이라고 한다.

이명숙 작가의 사진작품은 공간에서 보는 시각적 느낌도 중요하지만, 두 대상을 연결하는 고리, 다시 말해서 사이를 메워 주는 공간적인 느낌 ‘시간’이 차지하고 있음을 읽어내는 것이 더 중요한 메타포라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나이가 들면 바람 소리에도 눈물이 나고, 꽃 한 송이 피고 지는 것만 보아도 마음이 아리고, 둥근달이 찬 공중에 떠오르는 것만 보아도 왠지 모를 서글픔이 느껴진다.

시간이 지나고 연륜이 든다는 것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가는 그리움 같은 것이다. 그리고 새롭게 생성되는 존재는 쉼 없는 여정을 나서는 것이다. 마크 트웨인은 ‘생명의 선물, 죽음’이라는 글에서 "쾌락이든 명예든 사랑이든 돈이든 모두가 다 한때의 행복일 뿐, 결국 남는 건 고통과 치욕뿐."이라고 했다.

우리의 인생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이다. 이명숙 작가의 작품처럼 삶과 삶, 사물과 사물, 사람과 사물 사이에 보이지 않는 ‘시간’을 인정하고 겉치레에 신경 쓰기보다 순간을 즐겁게, 기쁨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세월의 조바심에서 벗어나는 비결이 아닐까 싶다.

이명숙 작가가 앞으로 추구해야 할 것은 어쩌면 사진 작업을 통해 예술 행위를 하는 삶이 아니라 나의 삶이 하나의 사진이고 예술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 그때 어느 길모퉁이에서 우연히 진정한 나를 만나는 아름다운 예술가가 되리라는 믿음을 가져본다.」

친구의 부탁으로 얼떨결에 써서 보낸 글인데 작품을 전시할 작가가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읽어냈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왔다. 작가의 첫 전시회가 성공적으로 끝나길 바랄 뿐이다.

 

저작권자 © 전국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